쉽게 이해하는 일본의 버블경제 이야기

2014.04.11 08:30

위 그래프는 1970년부터 2009년까지의 일본 니케이지수 차트입니다. 니케이지수는 쉽게 말해 일본 도쿄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의 주가지수라 보시면 됩니다. 우리나라의 코스피지수와 같은 개념이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보시다시피 1970년 1월 2,500대에서 시작한 니케이지수는 이후 일본의 경기호황에 힘입어 1985년에는 13,000대를 찍었습니다. 1970년부터 1985년까지 15년 사이에 주가지수가 5배 올랐습니다. (버블의 절정인 1989년 12월에는 38,000까지 올랐으니 30년만에 약 15.2배가 올랐습니다. 그리고 2009년 11월 22일 현재 니케이 지수는 9549.47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금융위기 당시에는 6,994.90을 찍었구요)

 

 



이렇게 주가가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일본 역사상 가장 긴 호황이라 불리는 1965년 11월~1970년 7월의 4년 9개월(57개월)간의 호황에 힘입은 바 큽니다. 참고로 태평양전쟁(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이 이렇게 빨리 경제적인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패전 이후 친미정권으로 탈바꿈해 미국의 원조를 받을 수 있었던데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호황과 월남전 특수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맡은 바 책임을 목숨걸고 수행하는 부지런한 민족성의 영향도 있겠죠.

 

아무튼 1960년대에 이미 일본 경제는 탄력을 받아 성장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 초반에 이미 미국에 이은 세계 제 2위의 경제대국이 됩니다. 1975년을 기준으로 보자면 국내총생산 면에서는 미국보다 못했지만, 국민소득은 당시 미국이 1만5천달러인데 비해, 일본은 1만8천달러로 미국을 제쳤습니다. (참고로 당시 국민소득 부문 세계 1위는 2만3천달러를 기록한 스위스입니다)

 

70년대를 거쳐 80년대에 들어서는 동안 2차례의 오일쇼크도 있었지만 일본은 잘 이겨냈고 경제성장은 그칠줄 몰랐습니다. 반면 미국은 80년대들어 재정적자와 대외무역수지 적자를 동시에 겪는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며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당시 달러고에 의한 무역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1985년 G5 국가 대표를 미국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 불러들여 달러화 가치를 절하하는 협약을 맺게 됩니다.

 

 

이것이 유명한 '플라자 합의'입니다. 일본 버블경기의 신호탄이 된 역사의 한장면입니다.

 

플라자합의로 인해 1985년 플라자 합의 당시 1달러당 240엔 전후였던 엔달러 환율은 이후 1년만에 1달러당 120엔대로 급변하게 됩니다. 불과 1년만에 엔화의 가치가 2배나 치솟은거죠.

 

엔고에 의해 대외수출에 타격을 받게 된 일본정부는 수출업계를 구제하기 위해 대규모 금융완화(저금리, 법인세 인하, 소득세율 인하) 조치를 시행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시중에 유동성이 대거 공급되게 되는데, 이렇게 공급된 유동성은 산업현장으로 투자되지 않고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으로 급격히 유입되게 됩니다.

 

맨 위에 소개한 니케이 지수 차트를 보시면 1985년 이후 니케이 지수가 이전과 달리 급격한 가파르기로 치솟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고, 돈의 힘에 의해 주가가 폭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버블 경기'라는 말을 만들어내게 된 시기가 바로 이때로 대략 '1986년 12월부터 1991년 2월까지의 4년 3개월(51개월)' 동안입니다.

 

IMF를 거치면서 수많은 은행이 문을 닫는 경험을 한 지금은 일본사람들이 은행도 믿지 못해서 현금을 다다미방 아래에 숨겨두고 있을 정도지만, 당시에는 재테크 열풍이 몰아쳐 경제신문 뿐만 아니라 일간신문이나 스포츠 신문까지도 주식투자, 부동산 투자 관련 지면을 만들어 금융상품 평론가, 부동산 거래 평론가 등이 스타 대접을 받으며 한껏 몸값을 높였습니다.

 

 

그 와중에 일본의 대표적인 국영기업인 NTT, JR, JT 등이 민영화되면서 돈은 엄청난 속도로 회전되며 일본 경제에 활력(에너지)를 더해줬습니다.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한 일본 정부와 각 지방자치체는 저다마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지역개발에 나서게 되었고, 마구잡이 개발사업은 다시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렸고 부동산 불패신화는 상식이 되어갔습니다. (참고로 도쿄만의 오다이바, 나가사키현의 하우스텐보스, 미야자키현의 시가이아 등 바다를 매립한 부동산 개발이나 초대형 리조트 개발이 대부분 이 시기에 이뤄졌습니다. 바다를 매립한 이유는 비싼 돈을 주고 땅을 구입하는 것보다 매립하는 비용이 저렴했기 때문이죠)

 

1986~1987년경에 이미 도쿄도 23구(우리나라의 서울에 해당)를 팔면 미국땅 전체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지가가 급등했습니다. 주식과 부동산이 가파르게 치솟는데도 일본 사회 내부에서는 어떤 경고음도 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앞으로도 이런 호황은 끝나지 않는다는 낙관론이 만연했습니다.

 

특히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뉴욕증시에서 벌어진 블랙먼데이(증시 개장과 함께 대량의 팔자 주문이 쏟아져 하루만에 508포인트, 비율로는 22.6%가 폭락한 날)를 계기로 전세계적인 공황이 올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되었지만, 일본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주가를 회복시키면서 '일본 경제의 힘'에 대한 신뢰는 한층 더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이쯤에서 다시 니케이차트를 보시면 1987년 10월 경 잠깐 조정을 받았던 니케이 지수가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당시 일본 기업들은 이미 순이익과 영업이익이 급감했지만,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식으로 자산가치를 재산정해 손해보는 장사를 하고 있으면서도 기업의 자산은 가파르게 증가하는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이를 지적하며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인을 보내는 사람들은 극소수였고, 일본 정부나 기업, 대다수의 국민들은 경기호황에 환호했습니다. (이 당시 쏟아지는 돈을 주체하지 못한 일본사람들이 해외여행에 대거 나서면서 일본인 특유의 깃발관광, 싹슬이 명품 쇼핑 등이 해외에서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호황이 계속 이어지면서 통상 담보가액의 70% 기준으로 대출을 해주던 은행은, 토지 가격의 상승을 예측해 담보물의 100~120%를 대출해주는 것을 당연시하게 됩니다. 이렇게 대출된 돈은 다시 일본의 부동산 가격과 주가를 더 높은곳으로 밀어 올리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당시 일본의 주요 은행에서 판매해 인기를 끌던 대출 상품 중에 '2세대 론'이라는 것도 있었다는 겁니다. 너무나 빨리 집값이 오르다보니 일반적인 샐러리맨의 수입으로는 평생을 갚아도 집값에 못미치게 되자, 자식세대까지 이어서 집값을 갚아나가는 50년 분할 대출 상품 등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또 집값이 너무나 비싸지다보니 상속을 받게 된 사람들이 집을 팔지 않고는 상속세를 낼 수가 없어서 친척집의 자식을 양자로 등록하는 방식으로 상속받는 자식 수를 임의로 늘려 세금을 줄이는 수법이 공공연히 행해졌습니다.

 

반면 너무나 비싸진 집값 때문에 주택의 취득을 아예 포기한 젊은 부부들도 늘어나게 되면서 집을 포기하는 대신 고급차와 해외여행, 명품 쇼핑 등에 열을 올리는 새로운 유행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개인 뿐만 아니라 기업들 사이에도 만연해져서 1987년에는 야스다 화재(보험회사)가 고흐의 '해바라기'를 무려 57억엔에 구입해 전세계를 경악시켰지만, 그런 분위기에도 아랑곳 없이 세계의 명화들이 속속 일본 기업이나 개인의 소유물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동산 재벌인 미쓰비시 토지는 1989년 10월 미국의 상징인 뉴욕의 록펠러센터를 약 2,200억엔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소니는 콜롬비아 영화사를 인수했구요. 이때문에 미국에서는 일본 위협론이 퍼져나가면서 반일감정이 생겨나기도 했죠.

 

1987년 나카지마 사토로의 F1참전을 계기로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모터스포츠붐이 일어났고, 일본의 대기업은 천문학적인 돈을 모터스포츠 후원에 쏟아부었습니다. 또 도쿄 도심에는 하루가 다르게 고급 수입차와 스포츠카들이 늘어났는데, 당시 신차가격이  4,650만엔이나 하던 페라리 F40을 사려면 주문 후 2~3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정식 유통경로가 아닌 다른 경로로 수입해 판매하는 병행수입 페라리 F40은 2억5,000만엔에 팔려나갔습니다. 고가 자동차의 대명사인 롤스 로이스는 1년간 생산대수의 1/3을 일본에서 팔아치웠습니다.

 

한편 버블 당시 일본의 취업시장에서는 구인난이 극심해 각 기업들이 대졸 신입사원을 확보하는데 열을 올렸는데, 1차로 신입사원을 확보한 기업은 그 사원이 다른 기업으로 이직할 것을 두려워해 입사가 내정되자 마자 바로 해외로 연수를 보내 다른 기업으로부터의 콜을 격리하는 '격리여행'이 유행했습니다.

 

 

이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이 시기 일본에서 벌어졌습니다. 버블이란 바로 이런 겁니다.

 

모든 일본 사람을 들뜨게 만들었던 일본의 버블경기가 붕괴되기 시작한 것은 1989년 12월 일본은행 총재로 취임한 미에노 야스시가 그동안 일관되게 추진해왔던 '금융완화정책'을 '금융긴축정책'으로 변화를 선언하면서부터 입니다.

 

대외적으로는 1989년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냉전이 종료되던 시기라 글로벌 경제에 변화가 시작된 시기였고, 엔화 가치와 니케이지수도 하락세로 접어들었는데, 당시 분위기를 오판한 미에노 일본은행 총재는 과열된 경기를 바로 잡는다는 명분아래 급격한 긴축정책을 시행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긴축정책으로는 재정수입 확대를 위한 소비세 제도 도입과 1990년 3월에 시행한 토지관련 대출 총량규제가 있습니다.

 

 

안그래도 경기가 주춤해지는 상황이었는데, 뒤늦은 그러면서도 갑작스럽게 진행된 일본의 금융긴축정책은 제일 먼저 니케이 주가지수를 폭락시켰습니다. 1990년 1월 4만 포인트에 근접했던 니케이지수는 불과 몇개월만인 10월 1일에 2만 포인트가 무너지면서 반토막이 납니다. 주가가 급락하는 시기에도 도쿄를 비롯한 일본 전국의 부동산 가격은 견고히 버텼지만, 차즘 폭락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후 1993년경부터 주가침체와 불량채권의 증가로 인해 대기업 금융기관이 차례차례 파탄나기 시작했지만, 1997년까지도 일본 사람들 중에는 일시적인 조정으로 믿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1998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에 금융위기가 닥쳐오면서 일본 역시 경기가 극단적으로 악화되었고 일본의 버블경기는 완벽하게 붕괴하게 됩니다.

 

일이 안될려면 안된다고 버블붕괴 조짐이 가시화되던 1992년 당시 일본 정계의 상황은 최악이라 버블붕괴 후의 경제상황에 충분한 대응을 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1992년 택배회사인 도쿄 사카와 규빈의 정치자금 스캔들로 인해 일본 정치는 55년 체제 이후 38년간 집권해온 자민당이 야당으로 전락하고, 군소연립정당이 집권당이 되었습니다. 이때문에 일본의 정치는 기존질서가 무너지면서 방향을 잃은 상태였고, 때마치 버블경기도 함께 무너지면서 일본 경제도 방향을 잃게 됩니다.

 

이런 모든 과정이 말로 설명하면 복잡하지만 그 순간순간의 희비는 니케이 차트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일본의 버블 붕괴 이후 국내에서도 경기가 조금만 과열되면 '버블'이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고 있기에 과연 '일본의 버블경기'는 어땠는지 말씀해드렸습니다.

 

 

이렇게 하나 하나 살펴보면 일본의 버블과 또 이후의 버블 붕괴는 미국에 의해 강요된 플라자 합의, 급격한 엔고로 인해 경기가 악화될 것을 두려워한 일본 정부의 무모한 재정·금융정책, 사상 최대의 활황을 즐기기에 바빠 활황 이후에 닥쳐올 경기침체에 대한 대책전무, 관료가 주체가 된 국가주도하의 일본경제 체제(견제장치가 없음), 사카와 규빈 사태로 인해 기존 정치질서의 몰락 등 여러가지 요인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우연 혹은 필연의 산물입니다.  

 

간략하게 '일본의 버블'에 대해 요약해보려고 했는데, 말이 지나치게 많았네요. 이렇게 긴 글을 누가 읽어볼까 싶지만 재미삼아 한 번 읽어두시기 바랍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웃나라 일본이 걸어온 길 중에서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을지 한 번 생각해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출처 : http://cafe.naver.com/mygc.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2028


2차출처 : 다음카페 엽기혹은 진실 작성자 초계함님 


3차출처 : 다음카페 이종격투기 작성자 메르세데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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