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여름에 개봉 예정인
바람 불지 않는(風立ちぬ)
같은 2013년 여름에 개봉 예정인
카구야히메 이야기(かぐや姫の物語)
2013년 여름에 개봉 예정인
風立ちぬ (바람 불지 않는)
같은 2013년 여름에 개봉 예정인
카구야히메 이야기(かぐや姫の物語)
2013년 여름에 개봉 예정인
風立ちぬ (바람 불지 않는)
같은 2013년 여름에 개봉 예정인
카구야히메 이야기(かぐや姫の物語)
2013년 여름에 개봉 예정인
風立ちぬ (바람 불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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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구야히메 이야기(かぐや姫の物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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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2013년 여름에 개봉 예정인
카구야히메 이야기(かぐや姫の物語)
주식회사 스튜디오 지브리(株式会社スタジオジブリ 가부시키카이샤 스타지오 지브리[*], STUDIO GHIBLI INC.)는, 애니메이션 위주의 영상작품의 기획 및 제작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일본의 기업이다.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의 제작을 주력 사업으로 하고 있으며, 1990년대 중반 이후, 단편 작품의 제작 및 실사판 작품의 기획에도 관여하고 있다. 출판사업 및 음악 사업 또한 수행하고 있다. 목차 [숨기기] 1 명칭 1.1 라벨명 2 역사 3 주요 작품 3.1 극장판 및 TV 시리즈 3.1.1 스튜디오 지브리 이전의 작품들 3.1.2 스튜디오 지브리 제작 작품 3.2 단편 애니메이션 3.3 참여 작품 4 관련 시설 5 주석 6 바깥 고리 [편집]명칭 '스튜디오 지브리'의 명칭은 사하라 사막에 부는 열풍을 뜻하는 리비아어 'ghibli'에서 유래하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이탈리아의 비행기의 이름이기도 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생각에서 '지브리'가 되었으나, 원어에 가까운 발음은 '기블리'이다(이탈리아의 마셀라티사의 승용차 '기블리'(ghibli)는 일본에서도 1970년대에 '기브리'(ギブリ)라 불리었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마크에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인 '이웃집 토토로'(となりトトロ)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토토로가 디자인되어 있다. 지브리의 제2라벨인 실사작품 부문의 '스튜디오 카지노'(スタジオカジノ)는, 스튜디오가 위치한 도쿄 도 고가네이 시의 '가지노마치'(梶野町)에서 이름을 따왔다. [편집]라벨명 스튜디오 지브리(スタジオジブリ 스타지오 지브리[*]) '천공의 성 라퓨타'(天空の城ラピュタ, 미야자키 하야오 원작·각본·감독), '이웃집 토토로'(となりのトトロ) 등 스튜디오 카지노 (スタジオカジノ 스타지오 가지노[*]) '시키지쓰'(式日, 안노 히데아키 감독), '사토라레'(サトラレ, 모토스에 가즈유키 감독) 등 스튜디오 기블리(スタジオギブリ 스타지오 기브리[*]) '기블리즈 에피소드 2'(ギブリーズ episode2) 등의 작품 스튜디오 기블리의 마크에는 '기블리즈 에피소드 2'의 캐릭터 '노나카 군'(野中くん)이 그려져있음. [편집]역사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제작한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인 '톱 크래프트'(トップクラフト)를 모체로, 다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을 목적으로 1985년 6월 15일에 도쿠마 서점의 출자로 주식회사로서 설립되었다.[1] 사장은 도쿠마 서점의 사장인 도쿠마 야스요시(徳間康快)가 취임하였으며, 스튜디오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톱 크래프트의 대표이사였던 상무 하라 도루(原徹)였다. 처음에는 작품마다 스탭을 모집하여 완성 후 해산하는 방식을 채택하였으며, 애니메이터의 급료도 수당제였으나, 이후 인재 육성의 차원에서 애니메이터의 급료를 고정 급료제로 하는 등, 고품질의 안정적인 작품 제작에 거점을 두게 되었다. 극장판 작품의 제작 전문 스튜디오로서의 인상이 강하나, 프로덕션 I.G 및 가이낙스의 작품 등, TV판 작품 쪽도 손을 대고 있다. 1985년 스튜디오 설립. 1991년 경영방침의 차이에 의한 대립으로 상무 하라 도루가 사임을 하고, 후임으로 스즈키 도시오가 취임하다. 1992년 8월 6일 히가시코가네이 역 근처 새 사옥으로 이전하다. 1997년 6월에 경영악화된 모회사 도쿠마 서점에 흡수되다. 같은 해 '모노노케히메' 완성 후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브리를 퇴사하다. 1999년 도쿠마 서점의 제1 사업부문이 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브리의 소장으로 복귀하다. 2004년 도쿠마 서점 스튜디오 지브리 사업부가 주식회사 지브리 스튜디오로 분할되다. 2005년 4월에 도쿠마 서점 산하를 벗어나 독립하여, 스즈키 도시오가 대표이사 사장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티븐 앨버트가 각각 이사로 취임하다. 2008년 2월, 스즈키 도시오가 대표이사 사장직에서 물러나 이사 겸 프로듀서에 전념하게 되며, 후임으로 전 월트 디즈니 재팬 회장이었던 호시노 고지(星野康二)가 사장에 취임하다. [편집]주요 작품 [편집]극장판 및 TV 시리즈 [편집]스튜디오 지브리 이전의 작품들 다음은 스튜디오 지브리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미야자키 하야오 등 현지브리의 스탭들이 참여하였던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들은 브에나 비스타 홈 엔터테인먼트의 '지브리가 잇파이(ジブリがいっぱい) Collection'상표의 비디오 세트로 발매되었다. '팬더와 아기팬더 (パンダコパンダ, 도쿄 무비 제작, 미야자키 하야오 원안 각본, 다카하타 이사오 연출, 1972년) '팬더와 아기팬더 비 그친후의 서커스 편'(パンダコパンダ 雨ふりサーカスの巻, 도쿄 무비 제작, 미야자키 하야오 각본, 다카하타 이사오 연출, 1973년)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도쿄 무비 신사(新社) 제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1979년)[2] '꼬마 지에' 극장판(じゃりン子チエ, 키티 뮤직, 도쿄 무비 신사 제작,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1981년) '첼리스트 고쉬'(セロ弾きのゴーシュ, 오 프로덕션(オープロダクション) 제작,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1982년)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風の谷のナウシカ, 미야자키 하야오, 1984)[3] [편집]스튜디오 지브리 제작 작품 다음은 2010년 발표 작품까지 포함된 스튜디오 지브리의 극장판 및 TV시리즈 애니메이션의 목록이다. 이상의 목록 중 '벼랑 위의 포뇨'를 제외하고는 '지브리가 잇파이(ジブリがいっぱい) Collection' 상표의 비디오 세트로 발매되었다. 굵은 글씨로 표시한 작품은 대원미디어를 통해 대한민국에 수입된 작품이며, 이들의 한국어 명칭은 대원미디어 측의 명칭을 따랐다.[4] 천공의 성 라퓨타(天空の城ラピュタ, 미야자키 하야오, 1986) 이웃집 토토로(となりのトトロ, 미야자키 하야오, 1988) 반딧불의 묘 (火垂るの墓, 다카하타 이사오, 1988) 마녀 배달부 키키 (魔女の宅急便, 미야자키 하야오, 1989) 추억은 방울방울 (おもひでぽろぽろ, 다카하타 이사오, 1991) 붉은 돼지 (紅の豚, 미야자키 하야오, 1992) '바다가 들린다' (海がきこえる, 모치즈키 도모미, 1993)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平成狸合戦ぽんぽこ, 다카하타 이사오, 1994) 귀를 기울이면 (耳をすませば, 곤도 요시후미, 1995) 모노노케 히메 (もののけ姫, 미야자키 하야오, 1997) 이웃집 야마다군 (ホーホケキョ となりの山田くん, 다카하타 이사오, 1999)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千と千尋の神隠し, 미야자키 하야오, 2001) 고양이의 보은 (猫の恩返し, 모리타 히로유키, 2002) 하울의 움직이는 성 (ハウルの動く城, 미야자키 하야오, 2004) 게드 전기 - 어스시의 전설 (ゲド戦記, 미야자키 고로, 2006 ) 벼랑 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미야자키 하야오, 2008) 마루 밑 아리에티 (借りぐらしのアリエッティ, 요네바야시 히로아키, 2010) 코쿠리코 언덕에서(コクリコ坂から, 미야자키 고로, 2011) [편집]단편 애니메이션 '온 유어 마크' (미야자키 하야오, 1995) '쾌걸 조로' (怪傑ゾロ, 1996) '기블리즈' (ギブリーズ, 모모세 요시유키, 2000) '필름 빙글빙글' (フィルムぐるぐる, 미야자키 하야오, 2001) '고래 잡기'(くじらとり, 미야자키 하야오, 2001) '기블리즈 에피소드 2' (ギブリーズ episode2?, 모모세 요시유키, 2002) '고로의 산보' (コロの大さんぽ, 미야자키 하야오, 2002) '메이와 아기고양이 버스' (めいとこねこバス, 미야자키 하야오, 2002) '하늘을 나는 공상의 기계들' (空想の空飛ぶ機械達, 미야자키 하야오, 2002) '포터블 공항' (ポータブル空港, 스튜디오 카지노, 2005) 'space station No.9/하늘을 나는 도시 계획' (空飛ぶ都市計画, 모모세 요시유키, 2005) '물거미 끙끙'(水グモもんもん, 미야자키 하야오, 2006) '별을 산 날'(星をかった日, 미야자키 하야오, 2006) '집찾기'(やどさがし, 미야자키 하야오, 2006) [편집]참여 작품 다음은 스튜디오 지브리가 타사의 애니메이션 제작에 협력하거나 하청을 받아 제작한 애니메이션들이다. TV 시리즈 크레용 신짱 (제작청부: 신에이 동화(シンエイ動画), 발주처: 프로덕션 I.G, 각화의 동화 담당, 1992년~, 단 2001년 방영분에만 참가함) 신세기 에반게리온 (제작청부: 다쓰노코 프로, 가이낙스, 11화 담당, 1995~1996년) '쾌걸 조로' (怪傑ゾロ, 제작청부:葦プロダクション, 26, 31, 51화 협력, 1996년) '포포로크로이스 이야기' (ポポロクロイス物語, 제작청부:ビィートレイン, 각화의 동화, 1998년) 도라에몽 (ドラえもん, 제작: 신에이 동화, 동화 파트, 2001년, 『のび太のご先祖さま』에만) '스크라이드' (スクライド, 제작청부: 선라이즈, 각 화 협력, 2001년) 'SAMURAI 7' (제작청부: 곤조 (ゴンゾ, 각 화 미술, 2004년) 'IGPX' (제작청부:프로덕션 I.G, 각 화 동화, 2005년) 'REIDEEN' (제작청부:프로덕션 I.G, 각 화 동화, 2007년) 'xxxHOLiC (제작청부:프로덕션 I.G, 각 화 동화, 2007년) '천원돌파 그렌라간' 天元突破グレンラガン, 제작청부: 가이낙스, 각 화 동화, 2007년) OVA '가이도마루' (怪童丸, 제작청부:프로덕션 I.G, 동화, 2001년) 극장판 '드래곤 볼 최강에의 길'(ドラゴンボール 最強への道, 제작청부: 도에이 애니메이션(東映アニメーション), 협력, 1996년) '진로 JIN-ROH'(人狼 JIN-ROH, 제작청부:프로덕션 I.G, 동화, 2000년) '사쿠라 대전 활동사진' (サクラ大戦 活動写真, 제작청부:프로덕션 I.G, 동화, 2001년) 이노센스 (イノセンス, 제작청부:프로덕션 I.G, 동화 및 제작 협력, 2004년) 극장판 '나루토' - '대활극! 유키히메 인법첩이라구!'劇場版 NARUTO -ナルト- 大活劇!雪姫忍法帖だってばよ!! (제작청부: 스튜디오 피에로(ぴえろ), 동화, 2004년) 미야자키 하야오(일본어: 宮崎 駿 みやざき はやお , 1941년 1월 5일 ~ )는 《미래소년 코난》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1년 1월 5일 도쿄 도 분쿄 구에서 태어나 가쿠슈인 대학에 진학하여 경제학을 전공하였다. 대학 재학 중에 청소년 신문에 만화를 기고하였으며, 1963년 졸업 후 도에이 애니메이션(東映動画)에 입사하여 후일 동업자가 되는 다카하타 이사오(高畑 勲)와 함께 본격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에 들어갔다. 《미래소년 코난》(1978년)·《빨강머리 앤》(1979년)에 이어 세계 멸망과 부흥이라는 극적인 소재와 환경이란 주제를 다뤘던《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4년)로 크게 성공하였다. 또한, 《마녀 배달부 키키》와 《붉은 돼지》는 상영된 그해 일본 최고의 흥행성적을 기록하였고,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하여 만든 《모노노케 히메(もののけ姬)》(1997년)는 제작비 20억 엔을 투자하여 14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1984년에 다카하타 이사오와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Studio Ghibli)를 창단하고 이후 《천공의 성 라퓨타》(1986년)·《마녀 배달부 키키》(1986년)·《이웃집 토토로》(1988년)·《추억은 방울방울》(1991년)·《붉은 돼지》(1992년)·《귀를 기울이면》(1995년)·《모노노케 히메》(1997년) 등을 성공적으로 발표한다.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의 금곰상을 수상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년)은 일본에서도 2천4백만 관객을 동원하는 일본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1] 이후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을 만들었고, 2006년에는 그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가 《게드 전기》를 감독, 제작하였는데 이전의 지브리 작품들보다 미흡한 점이 있었으나 그림과 음악은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벼랑 위의 포뇨》(2008년)를 제작하였다. 《벼랑 위의 포뇨》는 제65회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되었다.[2] 미야자키는 네 아들 중 둘째로, 도쿄의 분쿄 구에 있는 아케보노초 마을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아버지 가추지는 미야자키 항공사의 관리자로 일했다. 그 회사는 A6M 제로 전투기에 장착하는 방향타를 만들었다. 이 때부터 미야자키는 자주 비행기를 그리기 시작했고, 그 후 일생동안 비행의 매력에 빠져 지냈다. 이러한 경향은 후에 그의 영화에서 되풀이되며 분명하게 나타난다.[3] 1945년에 일본이 미국에 항복하게 되자, '미야자키 항공사'는 몰락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4] 미야자키의 어머니는 사회적 규범에 대해 자주 질문을 던졌으며, 열성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1947년부터 1955(56)년까지 결핵 치료를 받아야 했기에 그는 가족을 따라 자주 이사를 다녔다.[3] 특히 1948년부터 1956년까지 9년 동안 미야자키의 어머니는 병상에 누워지냈으며, 미야자키는 어머니 없이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만화 영화 《이웃집 토토로》는 그의 어린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 영화에 나오는 가족의 어머니도 비슷하게 고통받는다. 미야자키의 어머니는 당시에는 치료하기 어려웠던 척추카리에스(결핵균이 척추에 침투하여 발생하는 질환)에 오래 시달리다가, 1984년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5] 미야자키는 도요타마 고등학교에 다녔다. 3학년 때, 그는 '일본 최초의 장편 컬러 만화 영화'라고 하던 '하쿠자덴'(하얀 뱀 이야기)을 보았다.[6] 애니메이션에 대한 그의 관심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만화영화 제작자가 되기 전에 그는 사람 모습을 그리는 것을 배워야만 했는데, 그는 그 때까진 주로 비행기나 전투함만을 그렸기 때문이었다.[6]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쿠슈인 대학에 입학하였고, 1963년에 정치학과 경제학 학위를 얻고 졸업하였다. 그는 '아동문학 연구 모임'의 구성원이었고, 만화 연구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 곳은 '그 당시에 만화 모임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다.[6] 1963년 4월에 미야자키는 도에이 동화에서 직장을 얻었고, 《멍멍충신장》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 동참했다. 1965년 10월에 그는 동료 만화영화 제작자(애니메이터)인 아케미 오타와 결혼했다. 그녀는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 미야자키 고로(宮崎吾朗)와 미야자키 게이스케의 양육을 위해 직장을 떠났다. 고로는 현재 만화영화와 영화 제작자가 되었고,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게드전기'를 감독하였다. 게이스케는 나무 예술가가 되어 지브리 박물관에 있는 작품들을 창작했고, '마음의 속삭임' 이라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영화에서 나오는 나무 조각을 만들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일에 헌신했고, 일에만 집중하는 태도가 아들 고로와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7] [편집]작품 활동 미야자키는 도에이 애니메이션에서 일하면서 《걸리버의 우주여행》(1965)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생각했다. 그는 처음의 결말이 별로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자신의 아이디어에 따라 그 결말을 조정했으며, 그의 아이디어는 실제 상영된 영화에 반영되었다. 이후에 그는 수석 애니메이터와 컨셉트 아티스트(concept artist)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1968년에 다카하타 이사오가 감독한 획기적인 애니메이션인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라는 작품에서는 화면 디자이너(scene designer)로 참여했다. 미야자키는 이후 30년 동안 다카하타와 함께 일했다. 기미오 야부키의 애니메이션 《장화 신은 고양이》(1969)(원작:장화 신은 고양이)에서 미야자키는, 작품의 디자인을 짜고 이야기를 만들면서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는데, 거기에는 극적 절정에 해당하는 추격 장면도 포함되어 있다. 그 후, 미야자키는 '하늘을 나는 유령선'에 참여하여 그 작품에 나오는 장면을 제안했다. 탱크가 떼를 지어 도쿄 도심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자 대중이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는 그 장면을 그리는 일을 맡았다. 1971년에 미야자키는 '동물보물섬'과 '알리 바바와 40인의 도둑'에서 이야기의 구조와 인물의 성격,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화의 주요장면을 간단히 그린 그림을 나란히 붙인 널빤지인 스토리 보드를 만드는 작업도 했고 중요한 장면을 그리기도 했다. 린드그렌 미야자키는 1971년에 도에이 애니메이션를 떠나 A 프로로 자리를 옮겼다. A 프로는 그가 다카하타 이사오와 함께 첫 번째 루팡 3세 시리즈를 여섯 편 이후부터 공동으로 연출한 곳이다. 그와 다카하타는 '긴 양말의 삐삐' 시리즈를 사전제작하기 시작했고, 그 작품을 위한 스토리 보드 작업을 광범위하게 했다. 그러나 원작자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를 만나고 작품에 관한 자료 수집도 하려고 스웨덴으로 여행을 간 후에, 그들은 프로젝트의 완성에 관한 허가를 받지 못했고 그 작품은 취소되었다.[3] '긴 양말의 삐삐' 대신에 미야자키는 다카하타 이사오가 감독한 '팬더와 아기 팬더' (1972년)에서 원안·각본·화면설정·원화를 담당했다. 1978년에 《미래소년 코난》으로 연출 데뷔를 하였다. 1979년 '빨강 머리 앤'의 제작 도중에 미야자키는 니폰애니메이션을 떠났다. 그것은 그의 첫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인 '루팡 3세 - 카리오스트로의 성'을 감독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미야자키의 다음 작품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이었다. 나우시카는 이후 그의 작품에서 되풀이되는 주제가 많이 등장하는 모험 영화이다. 예로, 환경보전(ecology)에 관한 메시지나, 항공기의 매력, 그리고 특히 악한 역할인 경우에 인물의 성격을 정신적으로 모호하게 묘사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나우시카는 미야자키가 원작과 애니메이션 감독을 동시에 맡은 첫 번째 작품이었다. 그는 같은 제목의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애니메이션을 기획했는데, 그 후 2년이 흘러 애니메이션이 개봉된 후에도 만화는 완결되지 못했다. 지브리 박물관의 모습 1984년에 발표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성공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다카하타 이사오와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하였다.[8] 최근까지 그는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미야자키는 계속해서 영화 세 편을 만들면서 명성을 얻었다. "천공의 성 라퓨타"(1986)는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고아인 두 사람이 하늘을 떠다니는 신비의 섬을 찾아 모험에 뛰어드는 내용이며, "이웃집 토토로" (1988)는 두 소녀가 숲의 정령인 토토로와 교감하며 모험을 벌이는 이야기이며, "마녀 배달부 키키"(1989)는 에이코 카도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녀가 집을 떠나 마녀로서 대도시에 사는 내용이다. 위의 영화 세 편 모두에 하늘을 나는 장면이 항상 등장하는데, 미야자키가 비행에 대한 이상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는 날개를 위 아래로 흔들면서 나는 초기의 비행기(ornithopter)가 나오고, "이웃집 토토로"에서는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는 키키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난다. "붉은 돼지" (1992)는 미야자키 작품 중에서 예외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이 작품은 주인공이 성인 남성이다. 미야자키는 보통 장편 애니메이션에서 여주인공을 많이 등장시켰으며, 주인공들은 대개 어린이나 청소년이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반대하는 비행기 조종사이었는데, 그는 의인화된 돼지로 변한다. 영화는 192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주요 등장인물은 두 사람으로, 공적 즉 비행기를 타고 도적질을 하는 무리와 싸워서 보상금을 타내는 주인공과 부유한 미국 군인이다. 영화는 의무와 이기심 사이의 긴장을 주로 그리고 있다. 그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풍부한 암시를 담고 있으며, 1930년대와 1940년대 미국 영화를 참고하여 많은 유머와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붉은 돼지'는 영화 배우 험프리 보가트(Humphrey Bogart)가 영화에서 보여준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1997년작 "모노노케 히메"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보여주었던 생태적이고 정치적인 주제를 다시 다룬 작품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주로 숲의 동물신과 산업 발전을 위해 숲을 개발하려는 인간 사이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작품은 미야자키의 다른 애니메이션 작품보다 폭력적인 장면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영화는 일본에서 엄청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타이타닉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많은 수익을 거둔 영화였다. 결국 이 작품은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상을 수상했다. 미야자키는 "모노노케 히메"를 감독한 후에 잠시 물러나 휴식을 취했다. 쉬는 동안 미야자키는 친구의 딸들과 시간을 보냈고, 그 중 한 사람에게서 영감을 얻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을 만들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한 소녀의 이야기로, 그녀는 기괴한 신들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며, 여자 마법사가 그녀의 부모를 돼지로 변하게 한 후에 그 마법사가 소유한, 신들을 위한 목욕탕에서 일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2001년 7월에 개봉되어 일본에서 24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성공했고 그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있다. 이 영화는 많은 상을 받았는데, 2001년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물론이고 2002년에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에서도 최우수 장편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2004년 7월에 미야자키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완성했다. 이 영화는 다이아나 윈 존스(Diana Wynne Jones)의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이다. 미야자키가 물러났다가 다시 복귀한 이후에, 이 장편 애니메이션의 원래 감독이었던 호소다 마모루(細田守)[9]가 갑작스럽게 이 작품을 포기했었다. 영화는 2004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기술 공헌상(Golden Osella award)을 수상하였다. 2004년 11월 20일에 일본에서 개봉하였다. 2005년에 미야자키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그 후 미야자키가 만드는 마지막 영화가 아마도 "나는 내 어린 소년을 잃었다"가 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2007년에 이 작품의 제목이 "벼랑 위의 포뇨"로 바뀌었다.[10] 영화는 '소스케'라는 다섯 살 소년과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금붕어 공주 '포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사장 스즈키 토시오는 "영화의 70-80%가 바다에서 진행된다. 그것은 자유로운 드로잉으로 어떻게 바다와 그 물결을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감독이 도전한다는 것을 말해준다"라고 적었다. 이 영화는 미야자키의 최근 작품과는 대조적으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활용한 장면이 거의 없다. 또, 본인은 이 작품제작 중, 체력적으로 이번작이 마지막 장편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하지만,[11] 영화 개봉후 차기작에 대한 의욕을 나타냈었다.[12]
155억엔(약 2천억원)의 흥행기록했던 벼랑위의 포뇨 이후 약 5년만에 컴백한 지브리의 신작 2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 불지 않는 風立ちぬ (바람 불지 않는)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카구야히메 이야기(かぐや姫の物語)
두 작품이 2013년 여름에 개봉될 예정입니다.
(高畑勲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반딧불의 묘 감독, 천공의 성 라퓨타와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 의 프로듀서)
映画.com 2012年12月13日 16:00
http://eiga.com/news/20121213/10/
スタジオジブリ - STUDIO GHIBLI
http://www.ghibli.jp/
지브리, 마녀배달부 키키가 12월에 BD화 결정! (4) |
일본 금요 로드쇼에 이웃집의 토토로 방송 13회째 평균 시청률 18.3%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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