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유머글 따뜻하게 느껴지는 동물 조합 모음 사진 by 잡글서점 2013. 1. 2. 따뜻하게 느껴지는 동물 조합 모음 사진 드러워서 나도 이제 이렇게라도 해서 먹고 살아볼련다! 어뷰징 겁나 부럽더라! 나는 열심히 글 올려도 하루 1,2달러 벌기에 애 쓰는데! 그래 같이 그냥 그렇게 멘붕으로 벌어보자고!!! 핀란드(핀란드어: Suomi 수오미[*], 스웨덴어: Finland)는 북유럽에 있는 나라이다. 공식 명칭은 핀란드 공화국(핀란드어: Suomen Tasavalta 수오멘 타사발타[*], 스웨덴어: Republiken Finland 레푸블리켄 핀란드[*])이다. 서남쪽은 발트 해 남쪽은 핀란드 만을 통해 에스토니아와 가깝다. 서쪽은 보트니아 만 등의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스웨덴과 노르웨이, 러시아와 국경이 닿아 있다. 동쪽은 러시아의 카렐리야 공화국와 인접해 있다. 본토 서남쪽에 위치한 올란드 제도는 핀란드 통치 아래서 상당한 자치를 누리고 있다. 다수의 국민은 우랄족의 핀란드인에 속한다. 공용어는 핀란드어와 스웨덴어이다. 2011년 현재 인구는 약 550만 명이다. 목차 [숨기기] 1 역사 1.1 20세기 초반 1.2 냉전 시대 1.3 현대 2 정치 3 행정 구역 4 지리 5 경제 6 국민 6.1 인구 통계 6.2 언어남아메리카(南—) 대륙은 6대주의 하나로, 파나마 지협을 경계로 북아메리카 대륙과 분리된다. 라틴 아메리카라고도 한다. (프랑스령 기아나 제외) 이 대륙 대부분이 남반구에 속해 있다. 서쪽에는 태평양, 북쪽과 동쪽에는 대서양이 있다. 북서쪽에는 북아메리카와 카리브 해가 자리잡고 있다. "남아메리카"란 이름은 1580년 지도 제작자 마르틴 발트제뮐러와 마티아스 링만이 아메리카 대륙이 동인도가 아닌 신세계임을 주장한 최초의 유럽인인 아메리고 베스푸치 이름에서 지은 데서 나온 말이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면적은 17,840,000 평방킬로미터로, 지표면의 약 3.5%를 차지한다. 2008년 기준 이 대륙의 인구는 385,742,554 이상으로 추산된다. 남아메리카는 4번째로 큰 대륙(아시아,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순)이고 인구로는 5번째로 많다.(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북아메리카 순) 목차 [숨기기] 1 국가 목록 2 지리 3 기후 4 역사 4.1 현대사 5 정치 6 남구권 7 교통 8 자원 9 산업 10 인종 11 주민 12 문화 12.1 스포츠 13 읽어보기 14 주석 [편집] 국가 목록 현재 남아메리카에는 13개 국가가 있다. 이들을 가나다 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가이아나 가이아나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볼리비아 브라질 브라질 수리남 수리남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에콰도르 우루과이 우루과이 칠레 칠레 콜롬비아 콜롬비아 파라과이 파라과이 페루 페루 프랑스령 기아나 프랑스령 기아나 [편집] 지리 남아메리카는 신세계 혹은 서반구라 불리는 아메리카 대륙의 남쪽에 있다.(혹자는 남북아메리카를 단일 대륙으로 보고, 각각을 아대륙으로 칭하기도 한다[2]) 이 대륙은 콜롬비아와 파나마 국경 지역 혹은 파나마 지협을 가르는 파나마 운하를 경계로 북서쪽 대륙과 이어져있다. 지정학적으로나 지리학적으로나 파나마 전역은 (파나마 운하 동쪽도 포함해서) 북아메리카, 혹은 중앙아메리카에 포함한다. 남아메리카 본토의 대부분 지역은 남아메리카 판에 속한다. 카리브 제도(혹은 서인도 제도)는 복잡한 판 구조를 이루는 카리브 판 위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가까운 아루바 섬, 바르바도스, 트리니다드와 토바고는 남아메리카 판의 북쪽에 속한다. 네덜란드령 안틸레스(안티야스)와 베네수엘라 연방령도 여기에 속한다. 지정학적으로 이곳 섬나라들과 카리브의 도서 영토는 일반적으로 북아메리카 지역에 포함된다. 카리브와 맞닿은 남아메리카 국가(가령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가이아나, 수리남, 프랑스령 기아나)들은 또 카리브 남아메리카로 칭하기도 한다. 에콰도르령 갈라파고스 제도나 칠레령 이스터 섬(이 섬은 오세아니아에 속한다), 로빈슨 크루소 섬, 칠로에 섬, 티에라델푸에고 제도도 있다. 남아메리카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폭포인 앙헬 폭포가 베네수엘라에 있으며, (용적 기준) 가장 큰 강인 아마존 강이 있고, 가장 긴 산맥인 안데스 산맥(이곳 최고봉은 아콩카과 산으로 6,962m이다)도 있고,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인 아타카마 사막, 가장 넓은 열대우림인 아마존 우림, 가장 고도가 높은 수도인 볼리비아의 라 파스, 상선이 다니는 가장 고지대의 호수인 티티카카호, 그리고 남극을 제외하고 세계 최남단의 취락인 칠레의 푸에르토 토로가 있다. 남아메리카의 주요 지하 자원은 금, 은, 구리, 철광석, 주석, 석유가 있다. 이런 풍부한 자원은 남아메리카 국가의 주요 소득원으로 전쟁이나 급속한 경제 발전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일부 주요 자원 생산에 집중하는 경제 구조 때문에 산업 분화와 발전을 저해하는 문제도 있다. 그래서 국제 시장의 주요 자원 가격이 요동칠때마다 남아메리카 경제도 함께 뒤흔들렸으며, 극심한 정치 불안정을 야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 나라에서는 몇가지 자원 수출에 급급하는 경제 구조를 개편하여 산업 분화를 촉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남아메리카는 지구에서 생물 다양성이 뛰어난 대륙이기도 하다. 남아메리카 대륙은 야마, 아나콘다, 피라니아, 재규어, 비쿠냐, 맥 등 온갖 흥미롭고 독특한 동물종이 서식한다. 특히 아마존 열대 우림은 다양한 생물종의 터전으로 지구 생물종의 상당수가 이 곳에 살고 있다. 또 안데스 국가나 가이아나, 코노 수르, 브라질같은 지역은 면적이나 인구면에서 매우 큰 나라들이다. [편집] 기후 이 부분의 본문은 남아메리카의 기후입니다. Wiki letter w cropped.svg 이 부분은 토막글입니다. 서로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편집] 역사 [편집] 현대사 에바 페론, 아르헨티나 역사상 영향력 있었던 여성.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연설하고 있다. 20세기 말 남아메리카 대륙은 냉전의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우루과이의 정부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이 지원한 군사 독재로 전복되기도 했다. 독재 정부는 반대파를 억누르려고 수만명의 사람들을 정치범으로 잡아 가두었으며, 독재 국가간의 협조(콘도르 작전)로 상당수는 고문받고 살해되었다. 경제적으로 이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이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국의 냉전 독트린인 "안보"에 입각해 내부 반란을 진압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페루는 내부 분쟁에 시달렸다. 콜롬비아에서는 1964년 마르크스주의 게릴라(FARC-EP)가 봉기하여 지금은 여러 불법 좌익 군사조직과 마약 군벌로 자라나 아직도 국내 군사 분쟁을 겪고 있다.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혁명 운동과 우익 군사 독재는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민주화 물결이 대륙 전역으로 퍼지면서, 오늘날 민주 정치가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부패 문제가 상존하며, 어떠 나라들은 위기에 처해 정부가 무너질 위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대체로 일반 민중들은 민주화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1980년대말 외채는 심각한 문제로 발전했으며, 몇몇 국가들은 굳건한 민주정치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경제 정책을 반복하지 않고 그런 위기를 해결할 역량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21세기 초 최근의 아르헨티나 채무 불이행이 그 예이다. [편집] 정치 국제연합 지역 구분에서 나오는 남아메리카 지리 구성. 아타카마 사막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안데스 산맥. 야노스 Bariloche- Argentina2.jpg 21세기 벽두 첫 10년을 맞는 칠레, 우루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볼리비아,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같은 남아메리카 정치에는 사회주의자 지도자들을 위시한 좌파 열풍이 불고 있다. 이러한 좌파 도미노 현상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자유 시장 정책을 지키고 있으며, 대륙간 통합으로 진일보하고 있다. 최근 메르코수르와 안데스 공동체 두 관세 동맹을 통합하려는 정부간 구성체가 조직되었는데, 이것이 실현되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무역 블록이 형성된다.[1] 최근 새로운 정치 기구인 남미 국가 연합이 자유로운 인적 교류, 경제 개발, 공동 방위 정책, 관세 철폐를 추진하고 있다. [편집] 남구권 모든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역사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린 바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의 금리는 높고 투자는 저조한 편이다. 금리는 보통 미국 수준의 두 배에 이른다. 가령 베네수엘라는 약 22%, 수리남은 약 23%이다. 칠레는 예외적으로 1973년 군사 독재 이래로 자유시장 경제정책을 시행하여 1990년대 초 민주화 이후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덕분에 칠레 경제는 안정을 찾고 금리도 한자릿수의 낮은 수준이다. 남아메리카는 천연 자원 수출에 심하게 의존하고 있다. 세계 7위 경제 규모(남아메리카 2위)인 브라질은 총 수출액이 1,378억$이고, 그 다음으로 칠레는 581.2억$, 아르헨티나는 464.6억$이다.[2] 남아메리카 사회의 빈부 격차는 다른 대륙에 비해 상당히 심각하다. 베네수엘라, 파라과이, 볼리비아 등 이 대륙 나라들은 최상위 20%가 국부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최하위 20%는 5%도 가지지 못했다. 남아메리카의 여러 대도시 지역에서는 이런 빈부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슬럼과 임시 판자촌 옆에 고층건물과 상류층의 호화주택이 있곤 하다. Country GDP (nominal) of 2007[3] GDP (PPP) of 2007[4] GDP (PPP) per capita of 2007[4] HDI of 2008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260,122 523,739 13,100 Red Arrow Down.svg 0.860 볼리비아 볼리비아 11,163 34,200 4,400 Green Arrow Up Darker.svg 0.723 브라질 브라질 1,313,590 1,845,642 9,500 Green Arrow Up Darker.svg 0.807 칠레 칠레 145,841 261,800 14,300 Green Arrow Up Darker.svg 0.874 콜롬비아 콜롬비아 135,836 264,000 7,400 Green Arrow Up Darker.svg 0.787 에콰도르 에콰도르 40,800 86,400 7,200 Green Arrow Up Darker.svg 0.807 포클랜드 제도 포클랜드 제도 ? 75 35,400 N/A 프랑스령 기아나 프랑스령 기아나 3,524[5] N/A 17,336 (nominal, 2007)[5] N/A 가이아나 가이아나 896 2,393 3,186 Red Arrow Down.svg 0.725 파라과이 파라과이 9,110 23,000 4,000 Red Arrow Down.svg 0.752 페루 페루 107,000 217,500 9,000 Green Arrow Up Darker.svg 0.788 수리남 수리남 1,597 2,591 5,770 Red Arrow Down.svg 0.770 우루과이 우루과이 19,308 30,700 10,800 Green Arrow Up Darker.svg 0.859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181,862 262,800 12,800 Green Arrow Up Darker.svg 0.826 2008년 8월 초,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는 아르헨티나, 브라질의 지도자들과 라틴 아메리카 통합에 대해 언명한 바 있다. 그때 차베스는 카라카스와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잇는 야심찬 철도 건설 계획을 내놓았다.[6] [편집] 교통 이 부분의 본문은 남아메리카의 교통입니다. 남아메리카의 교통기관은 종합적인 체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지역간의 연결이 매우 부족하다.철도의 건설은 원래 지역간의 연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농산품과 광물 및 임산자원의 수출을 위해 항구에서 내륙으로 뻗어 있다. 철도의 밀집지역은 대항구를 중심으로 동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및 페루 지역이며, 내륙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브라질의 철도 총연장은 3만 3,484㎞이고 이르헨티나는 4만 4,246㎞이나 대부분 단선철도이다.도로는 인구가 조밀한 해안지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하여 내륙과의 연결성은 희박하다. 그리고 지방간의 도로는 거의 포장되어 있지 않다. 도로 연장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각각 131만 2,700㎞, 30만 9,000㎞이다.철도와 도로가 주로 해안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반면, 대륙의 내부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 수단은 하천이 담당한다. 특히 아마존과 그 지류는 내륙의 교통 소통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한편, 항공교통은 남아메리카에서 많이 보급되어 있다. 철도와 도로망의 불비로 지역간의 연결은 주로 항공 교통이 담당하고 있는 점이 타대륙과 다른 점이다.[7] [편집] 자원 이 부분의 본문은 남아메리카의 자원입니다. [편집] 산업 이 부분의 본문은 남아메리카의 산업입니다. [편집] 인종 이 부분의 본문은 남아메리카의 인종입니다. [편집] 주민 이 부분의 본문은 남아메리카의 주민입니다. 삼보인디오 [편집] 문화 이 부분의 본문은 남아메리카의 문화입니다. [편집] 스포츠 남아메리카는 전 세계 최고의 축구실력을 보유한 대륙이다. 남미의 축구는 유럽과 박빙을 겨루는 수준이지만 월드컵 통산 최다우승에 빛나는 브라질 브라질 및 그 브라질과 축구실력으로서 호각을 이루는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가 버티고 있으며 비록 현재는 실력이 떨어졌지만 한 때 세계최강의 축구강대국으로 군림했던 우루과이 우루과이도 남미에 소속되어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의 경우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축구 종목 2관왕을 기록했다.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가 축구종목에서 우승한 두 대회의 올림픽 중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파라과이 파라과이가 축구종목에서 준우승을 했다. 때문에 남아메리카 대륙은 불과 10개국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진출 티켓은 무려 4.5장에 달해 세계에서 월드컵 진출 티켓의 비율이 가장 높은 대륙이다. 하지만 플레이오프를 북중미와 겨루기 때문에 사실상 남미에 소속된 축구 국가대표팀은 월드컵 본선에 50%의 확률로 진출하며 이 중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본선에 고정적으로 진출한다. 더군다나 남미의 10개국이 거둔 역대 FIFA 월드컵 우승총합이 9회에 달해 월드컵 무대에서의 각 국가별 평균 기록이 무려 1회 우승에 달한다. 1930년 FIFA 월드컵 우승국 우루과이 우루과이 1950년 FIFA 월드컵 우승국 우루과이 우루과이 1958년 FIFA 월드컵 우승국 브라질 브라질 1962년 FIFA 월드컵 우승국 브라질 브라질 1970년 FIFA 월드컵 우승국 브라질 브라질 1978년 FIFA 월드컵 우승국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1986년 FIFA 월드컵 우승국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1994년 FIFA 월드컵 우승국 브라질 브라질 2002년 FIFA 월드컵 우승국 브라질 브라질 [편집] 읽어보기 라틴 아메리카 아메리카 아메리카 명칭에 대한 논란 [편집] 주석 1.↑ [ttp://www.globalpolicy.org/nations/sovereign/integrate/2008/1029newconsensus.htm Globalpolicy.org] 2.↑ CIA - The World Factbook - Rank Order - Exports 3.↑ Source: [1] 4.↑ 가 나 Source: [2] 5.↑ 가 나 (프랑스어) INSEE-CEROM. Les comptes économiques de la Guyane en 2006 : premiers résultats. 2008년 1월 14일에 확인. 6.↑ Train across South America. treehugger (2009년 1월 8일). 7.↑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남아메리카의 교통〉 브라질(포르투갈어: República Federativa do Brasil 헤푸블리카 페데라치바 두 브라지우[*], 정식 명칭은 브라질 연방 공화국)은 남아메리카에 있는 연방 공화국이다. 남아메리카 최대의 국토를 지닌 나라로 라틴 아메리카 지역 최대의 국가이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나라로, 아메리카 대륙 지역에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어 (브라질에서 사용하는 포르투갈어는 포르투갈 본토에서 사용하는 포르투갈어에는 없는 독특한 어법이나 악센트를 사용하여 브라질 포르투갈어라는 별도의 방언을 사용한다.)를 사용하는 나라이며 포르투갈어 사용 국가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수를 가진 국가다. 첫 수도는 사우바도르(Salvador), 그리고 두 번째 수도는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였으나, 해안 지역에 집중된 인구를 내륙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1960년부터 새로 건설된 브라질리아(Brasilia) 가 새로운 수도가 되었다. 삼바와 카니발의 본고장이기도 하며, 축구강국이기도 하다. 브라질의 명목 GDP 순위는 세계 8위이며, 구매력 기준 GDP는 세계 7위이다. 인구수는 CIA 자료에 따르면 199,321,413명이나, 실제 인구수는 약 2억 1천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목차 [숨기기] 1 역사 1.1 명칭 유래 1.2 콜럼버스 이전기 1.3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 1.4 브라질의 독립 1.5 제정시대 1.6 구공화국 시대 1.7 바르가스 시대 1.8 포퓰리즘의 시대 1.9 군사 독재 시대 1.10 민정 이후 2 정치 2.1 정당 2.2 선거 2.3 정권 3 지리 3.1 지형 3.2 기후 4 행정 구역 5 군사 6 외교 7 경제 8 산업 8.1 공업 8.2 농업 8.2.1 고무와 염료 8.2.2 목축 8.2.3 사탕수수 8.2.4 커피 8.3 자원 9 사회 9.1 도시 9.2 주민 9.3 언어 10 문화 10.1 음식 10.2 종교 11 스포츠 11.1 축구 12 교통 12.1 육상 12.2 버스 12.3 철도 13 화보 14 주석 15 바깥 고리 [편집]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브라질의 역사입니다. [편집] 명칭 유래 정식 명칭은 포르투갈어로 “República Federativa do Brasil”이며, 공식적인 영어 표기는 “Federative Republic of Brazil”이다. 포르투갈어로 "Brasil"라고 표기하지만, 영어로는“Brazil”라고 표기를 한다. 그러나 수도 브라질리아는 포르투갈어인 “Brasília”로 표기한다. 국호 브라질은 파우 브라질 나무에서 유래한다. 처음 1500년 포르투갈의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상륙했을 때에는 남미 대륙 일부가 아니라 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베라크루즈 (진정한 십자가) 섬"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마누엘 1세 시대에 "산타 크루즈(성 십자가)의 땅"으로 개명되었다. 그러나 너무 기독교적인 이름에 반발하여, 포르투갈인들이 이 지역에서 유럽에서 염료로 사용되던 브라질 스오우를 닮은 나무를 발견하고 염료로 사용하면서 이 나무를 포르투갈어로 "빨간 나무"를 의미하는 "브라질"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브라질 나무가 포르투갈에 수출이 활발하게 된 16세기에는 이 지역을 브라질로 부르게 되었다. [편집] 콜럼버스 이전기 브라질 인디오 브라질 최초의 주민은 BC 11,000년에 베링 해를 건너서 아시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들은 기원전 8000년경 현재 브라질의 영역에 도달하였다. 현재 브라질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잉카의 권위는 여기까지 미치지 않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원시적인 농경을 영위했다. 이후 유럽인들이 인디오라고 부른 투피-과라니계 원주민들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16세기 전반기에는 이러한 원주민들이 해안 지역에만 100만명에서 200만명으로 살고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도래할 때까지는 브라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았다. 브라질 원주민은 투피어계 외에 알아크어계, 카리브어계 집단이 있었다. 포르투갈인들이 처음으로 접촉한 것은 투피 어계 원주민이었다. 그래서 포르투갈 사람은 투피어 원주민 말이 브라질의 근본이라고 오해했고, 원주민은 각 지파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에게 그 말을 가르쳤다. [편집]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 브라질을 발견한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 149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유럽인 최초로 아메리카에 도달한 후, 이미 발견된 아메리카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브라질도 식민지화의 위협에 노출됐다. 1500년에 포르투갈의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브라질을 발견한 이후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다른 남북 아메리카 대륙과 다른 역사를 걷게 되었다. 1502년에는 이탈리아 사람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리우데자네이로를 명명했다. 초기 브라질에서는 기독교도로 개종한 이들에 의해 파우 브라질의 수출이 주요 산업이 되었으며, 이 때문에 처음에 베라크루즈 섬으로 불렸던 브라질은 16세기에 들어서 브라질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549년에 프랑스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초대 브라질 총독으로 토메 데 수자가 사우바도르에 부임했다. 1580년 포르투갈이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와 연합하자 브라질은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의 공격을 받아 북동부의 일부가 네덜란드 공화국에게 점령되었다. 네덜란드는 1661년 철수하였다. 한편, 파우 브라질이 고갈된 이후 새로운 산업으로 북동부에 마데이라 제도에서 사탕수수가 도입되어 엔제뇨(설탕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력으로 먼저 인디오가 노예화된 후 인디오의 수가 부족하자 서부와 앙골라, 모잠비크에서 흑인 노예가 대량으로 유입되어 포르투갈 농장주의 파젠다(농장)에서 혹사를 당했다. 전 인종의 흑인지도자 즘비 브라질 내륙의 탐험은 상파울루의 반데이란테(노예사냥 탐험대)에 의해 17세기에 시작되었다. 반데이란테는 각지에 원정하여 현재 도시의 기반이 되는 마을을 많이 세웠지만, 남부와 파라과이까지 원정하여 예수회가 보호되고 있던 과라니 사람을 노예로 잡아갔다. 이런 가운데 힘든 강제노동에 참다못한 흑인 노예 중에는 브라질 오지로 도망쳐 주거지를 형성한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주거지들을 ‘모캄보’나 ‘킬롬보’라고 불렀고, 이곳에서 아프리카 흑인들뿐만 아니라 인디오 원주민들도 있었다. 이러한 킬롬보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는 오늘 날의 알라고아스 주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강가 즘바’에 의해 다스려졌으며, 이후 그의 후계자인 ‘즘비’가 통치를 하였다. 이후 네덜란드인들과 포르투갈인들이 여러 차례 팔마레스를 공략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1695년 유명한 사오 파울로 출신의 도밍고스 조르제 벨호가 가까스로 킬롬보 공략에 성공하여 즘비를 죽이고 이곳을 정복했다. 1680년 포르투갈 식민지 정부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무시하고 라플라타 강 하구 좌안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건너편에 콜로니아 데 세크라멘토를 건설했기 때문에 이후 반다 오리엔탈 지역은 독립 이후까지 계속되는 브라질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권력 사이에 충돌의 장이 되었다. 또한, 남부에서는 라플라타 지역의 스페인의 영향을 받아 가우초라는 목동 집단이 생겨났다. 이후 18세기에는 미나스 제라이스에서 금광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골드러시가 일어나, 브라질의 중심이 북동부에서 남서부로 이동하여 1763년 리우데자네이로가 식민지의 수도가 되었다. 금광은 18세기 동안에 무려 30만명의 포르투갈인들이 브라질로 이주하였고, 금광을 개발하기 위해 더 많은 흑인 노예가 유입되었다. 한편 미나스의 중심지가 되었다 오우로 프레토에서는 독창적인 바로크 문화가 번창했다. 반다 오리엔탈을 둘러싼 스페인과 충돌 후 18세기 말에는 계몽주의가 유럽에서 전해지면서,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의 영향을 받아 1789년 포르투갈에서 독립을 하려 했던 "미나스의 음모"가 발각되어, 주모자인 치라덴테스가 처형되었다. 이후 아이티 혁명의 영향을 받아 크리올 백인이나 물라토, 크레올 흑인(크레올로)에 의한 독립 운동이 진행되지만, 식민지 시대에 브라질에 대학이 설립되지 않은 등 지적 환경의 부족은 브라질의 독립 운동을 주도한 일부 지식인의 "음모"에 머물렀고, 대중적인 기반을 가진 "혁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는 브라질과 이스파노 아메리카 국가 독립의 정체성 차이에 큰 영향을 주었다. [편집] 브라질의 독립 나폴레옹 전쟁은 1807년 장 주노(Jean-Andoche Junot)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포르투갈을 침공하면서 발발하였다. 이 때문에 포르투갈 왕가는 리스본에서 리우데자네이루로 천도하였고, 이후 리우의 개발이 진행되었다. 1815년 리우데자네이로는 브라질과 포르투갈 및 알가르베 연합 왕국의 수도로 결정되었다. 포르투갈 정부는 반다 오리엔탈의 호세 헤르바시오 아르티가스가 이끄는 연방 동맹과 전투를 통해 반다 오리엔탈을 지배하였으며, 정복한 지역에 시스플라티나 주(Cisplatina)를 설립했다. 1820년 포르투갈을 자유주의적인 입헌군주국으로 변혁하려는 혁명이 일어나자, 리우데자네이루의 주앙 6세가 귀국을 요청했다. 1821년 포르투갈 왕궁은 리스본으로 귀환했지만, 섭정으로 잔류한 브라간사 왕가의 황태자 페드루를 죠제 보니파시오를 대표하는 브라질인 세력이 지지하여, 1822년 9월 7일에 페드루는 황제인 페드루 1세(재위 1823-1831)에 즉위하여 브라질 제국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편집] 제정시대 페드루 2세 브라질의 독립은 브라간사 왕가의 황제라는 구심력이 있었기 때문에,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와 호세 데 산 마르틴, 미겔 이달고 등이 주장하는 공화제와 입헌군주제의 사상이 충돌하지 않았다. 이스파노 아메리카 국가가 분열하는 것과 달리 광대한 브라질 식민지 단일 단위로 새로운 주권 국가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것은 식민지 시대의 엘리트 계층이 독립 후에도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따라서 제정 시대는 처음부터 각 지방의 중앙정부에 대한 반란과 공화제를 요구하는 자유주의자의 반란이 일어났다. 1820년대 북동부 페르남부쿠 주에서는 적도 연맹의 반란이 일어났고, 최남단의 시스플라티나 주에서는 오리엔탈 주의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 복귀를 요구한 33명의 오리엔탈 주 사람이 잠입하여 시스플라티나 주를 둘러싸고 시스플라티나 전쟁이 발발했다. 시스플라티나 주는 영국의 중재에 의해 1828년에 우루과이 오리엔탈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1831년 페드루 1세가 퇴위하면서 지방의 혼란이 더욱 가중되었고, 최남단의 히우그란지두술 주에서 목장 주와 가우초가 반란을 일으켜 파라포스 전쟁이 발발했다. 1840년 페드루 2세 (브라질)가 즉위하면서 사태는 안정을 찾기 시작했으며, 1848년 프라이에이라의 반란을 진압한 후, 브라질 사상 최초의 안정기가 찾아왔다. 페드루 2세는 영토 야심을 가지고 있던 우루과이, 파라과이에 개입하여, 그 결과 1864년에 파라과이의 시스코 소라노 로페즈 대통령은 브라질에 선전포고하여 파라과이 전쟁이 일어났지만, 카시아스 공이 이끄는 브라질 제국이 주체가 된 삼국동맹군은 파라과이를 격파했다. 한편, 독립 후에도 대농장의 의해 노예제도가 계속 유지되었지만, 미국의 남북 전쟁 후 서반구에서 노예제도를 채택한 독립 국가는 브라질 제국만 남았기 때문에 삼국동맹 전쟁 이후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에 의해 노예제도는 비판을 받았다. 삼국동맹 전쟁 이후 제도적으로 확립된 군의 청년장교(테넨테)들은 실증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점차적으로 노예제도의 폐지와 제정의 폐지를 포함한 국민운동이 싹텄다. 이 운동은 1888년으로 《황금법》이 공포되면서 서반구에서 마지막까지 유지되었던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페드루 2세는 노예제도의 폐지로 인해 대농장의 지원도 잃었고, 다음해 1889년 데오도로 다 폰세카 장군의 쿠데타로 인해 제정이 붕괴되었다. [편집] 구공화국 시대 1889년에 일어난 공화제 혁명으로 브라질 제국은 공화제로 전환되었다. 이 시기에는 카페 콩 레이치(밀크커피)라고 불렸던 커피재배가 주된 산업인 상파울루 주와 목축업을 기반으로한 미나스제라이스 주가 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관행이 생겼다. 또한 제정 시대부터 커피, 농장에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이민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노예제 폐지 후 이민자의 유입 속도가 더욱 빨라져, 1908년에는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일본인 이민자들이 유입되었다. 1919년에 열린 파리강화 회의에서 일본이 제출한 인종차별 철폐 방안에 찬성하는 등 인종차별 철폐에 적극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연합국으로 참전한 후, 1920년대에는 카페 콩 레이치 체제에 대한 비판이 높아져, 루이스 카를로스 프레스테스를 비롯한 테넨테(청년 장교)들이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켜 했다. 이 테넨치즈모가 직접 국정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1930년대의 정치 상황을 마련하게 했다. [편집] 바르가스 시대 1930년 카페 콩 레이치 체제에 대한 반란이 각지에서 일어났다. 히우그란지두술 주의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1930년 혁명을 일으켜, 독재 정치를 확립하려 했다. 1932년에는 상파울루 주 반 바르가스 세력에 의해 호헌 혁명이 발발하였고, 이 반란을 진압한 바르가스는 브라질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 1937년 바르가스는 쿠데타에 의해 이탈리아 파시즘에 영향을 받은 이스타두 노부(신국가) 체제를 확립하고, 바르가스 시대에는 대학의 정비, 국가 주도의 공업화, 민족주의의 추진과 이민자 동화 정책, 중앙 집권 체제의 확립이 진행되었다. 1942년에 바르가스는 제2차 세계대전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참전했지만, 독재 체제에 대한 불만이 국민과 군 내부에서 강해져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5년 10월 13일 군사 쿠데타로 실각했다. [편집] 포퓰리즘의 시대 브라질리아 대성당 1946년 새로운 헌법이 제정된 이후 1950년 브라질 최초의 민주 선거를 통해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두 번째 집권한 바르가스는 파시즘 색상보다 좌파 포풀리즘 색깔을 내세워 브라질 경제의 국민화가 진행되었지만, 군의 저항으로 바르가스는 1954년에 자살했다. 1956년 취임한 쥬세리노 쿠비세키 대통령은 “50년 발전을 5년에”라는 공약을 내걸고 개발 정책을 추진하여, 내륙의 고이아스 주에 새로운 수도 브라질리아를 건설한 후 1960년 리루데자네이로에서 수도를 옮겨왔다. 그러나 이 개발 정책으로 발생한 부채가 재정을 압박하여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었다. 1961년 취임한 존 베우키오루 마르케스 골라르트 (일명 장고) 대통령은 이 같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1964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카스텔루 브랑쿠 장군의 쿠데타로 실각했다. [편집] 군사 독재 시대 1964년 쿠데타를 일으킨 카스텔루 브랑쿠 장군은 군사 독재 체제를 확립하고, 친미반공 정책과 외국 자본의 도입을 중심으로 한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군정의 시대는 "브라질의 기적"이라고 했을 정도의 고도 경제 성장이 가능했지만, 1973년 오일쇼크 이후 경제 성장은 추락하고, 소득 격차의 증가로 인해 범죄 발생 비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또한 군사 정권에 의한 인권 침해도 큰 문제가 되었다. 그동안 각지에서 카를로스 마리게라의 민족해방행동(ALN)과 10월 8일 혁명운동 등 도시 게릴라가 무장 투쟁을 전개하여 외국대사를 납치하는 등 여러 차례에 걸친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1974년 대통령에 취임한 에르네스투 게이세우 장군은 국민적인 불만이 팽배해지자, 군정의 노선 전환했고, 1979년에 대통령에 취임한 주앙 피게이레두는 민정 이관을 공약했다. 1985년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탄크레두 네베스가 승리했다. [편집] 민정 이후 노동자당의 룰라 전 대통령과 영부인 1985년에 민정 이양을 하고 문민 정권이 부활했지만, 네베스가 급사했기 때문에 부통령이었던 조제 사르네이가 대통령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의 확대로 인해 경제는 악화되었고, 사르네이 정권은 국내에서 큰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라울 알폰신 정권 하의 아르헨티나와의 관계가 이 시기에 크게 개선되었고, 오랫동안 계속된 양국의 적대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1990년 국가재건당 후보인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경제 문제에 대처하지 못해 수많은 부패와 각종 기행을 남기고, 1992년에 파면되었다. 부통령 이타마르 프랑쿠가 이어받은 후 1995년 브라질 사회민주당에서 취임한 페르난두 엥히키 카르도주 정권 하에서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파라과이는 같은 해 메르코수르(남미 공동 시장)를 발족 했다. 2003년 노동자당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취임 이후 세계 경제의 호조를 바탕으로 경제를 회복하였다. 룰라는 두 번의 연임을 했고, 2010년 10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인 노동자당의 지우마 호세프 국무부 장관이 당선됐다. 호세프는 2011년 1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편집] 정치 브라질의 상하 양원 왼쪽에서 룰라 전 대통령, 마리자 레티 대통령 부인, 펠레 미국식 대통령제를 채택하였으며, 대한민국과는 달리 부통령이 존재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대통령은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다. 브라질은 대통령제를 기반으로하여 대통령을 원수로 하는 연방공화제 국가이다.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4년이며, 한 번에 한하여 재선이 인정되고 있다. 즉, 3선은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하는 것이 가능하다. 의회는 상원(원로원 상수 81), 하원(하원 상수 513)의 양원제이다. 현재 대통령은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지우마 호세프(노동당)이다. 현행 헌법은 1988년 헌법이다. 동서 냉전시대인 1964년부터 1985년까지는 군사정권이었다. 군사정권 하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관료와 정치인, 경찰의 부패와 부정부패가 큰 상태이다. [편집] 정당 여당인 노동당 (PT) 외에 여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던 브라질 민주운동당(PMDB)과 사회국민당(PPS) 등이 있다. 여당 수뇌부 사이에서 다른 당 의원의 매수, 불법 선거 모금으로 비자금 조성 등의 의혹이 나온 이후, 여당의 존재감이 떨어지고 있다. [편집] 선거 투표는 18세부터 70세까지의 읽고 쓸 수 있는 모든 국민에게 의무가 있다. (의무투표제) 원하면 16세 이상 18세 미만 또는 70세 이상 국민과 문맹 국민도 투표할 수 있다. [편집] 정권 2003년 1월 룰라 정권이 출범했다. 원래 노동 조합의 지도자였던 룰라는 "기아 제로" 계획을 실시, 빈곤가정을 위한 식량 원조와 원조금 제도 등을 추진했다. 빈곤 가정의 생활 수준을 꾸준히 개선하여 경제 발전에 뒤쳐져 있던 내륙의 인프라 정비도 진행되고 있다. 외교 면에서는 남미 통합의 리더십도 발휘했다. 2006년 6월 24일에 룰라 대통령은 집권 여당 노동자당의 전국 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했고, 10월 대선에서 빈곤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재선했다. 룰라 정권은 2014년 FIFA 월드컵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로 올림픽라는 양대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하여 성공 적인 개최를 위해 준비가 시작되고 있다. 2011년 1월 1일부터 룰라의 뒤를 이은 지우마 호세프 새 정부가 출범했다. [편집] 지리 아마존 강의 모습 사오 조아킴, 산타카타리나 주의 눈 [편집] 지형 브라질은 남아메리카 최대의 국가로서 유역을 포함하면 8,514,876.599km²에 달하며 대륙의 48%를 차지하고 있다. 면적 상으로는 러시아, 캐나다,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에 속하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세번 째로 큰 나라이다.[1] 북부는 아마존 강이 흐르는 세계 최대의 열대 우림 지대이며(아마존 고원), 남부에는 브라질 고원이 펼쳐져 있다. 최근 환경 파괴에 의한 아마존강 유역의 사막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최고봉은 베네수엘라와의 국경 근처 북부 기아나 고지의 피고 다 네블리나 산으로 해발 3,014m이다. 열대는 "Cerrado"라고 불리는 광대한 초원이 펼쳐져 있으며, 에마스 국립공원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북동부는 해안에서 대서양림이 내륙에서 건조한 셀 톤이 펼쳐져 자주 가뭄에 시달려 왔다. 프랑스령 기아나, 수리남, 가이아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및 우루과이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즉, 에콰도르와 칠레를 제외한 남아메리카의 모든 나라와 국경을 접한다. 남서부 파라과이, 아르헨티나와의 국경 부근에는 유명한 이구아수 폭포가 있고, 라플라타 강 수계의 큰 강 파라나 강이 흐른다. 다른 강으로는 네그로 강, 상프란시스쿠 강, 싱구 강, 마데이라 강과 타파조스 강이 있다. 또한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국경 부근은 세계 최대의 열대 습지인 판타날 자연 보전 지역이 있다. 브라질 남부 세개 주는 브라질 고원에서 우루과이, 아르헨티나로 이어지는 팜파스(대평원)와 마이그레이션 지대가 되고, 전통적으로 목축업이 성행하여 가우슈도 존재한다. 남부는 코노 수르의 일부로 취급되기도 한다. [편집] 기후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국토의 93%는 열대 지역에 속한다. 브라질의 기후는 북부의 열대 기후와 남회귀선이 지나는 상파울루 이남의 온대 기후로 나뉜다. 또한 열대 기후도 지역 특색에 따라 적도 기후, 열대, 스텝, 고지대성 열대, 그리고 아열대 기후로 나뉜다. 기온은 열대지역에서 연중 25도 이상 유지되며 기온의 변화가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온대 지방인 히우그란지두술 주, 산타카타리나 주 지방에는 겨울철(6 - 8월)에 눈이 내리기도 한다. 강우량은 대부분 지역이 연중 1,000에서 1,500mm이며 대부분 여름철인 9월부터 4월까지 내린다. 아마존 지역은 연중 2,000mm이상이며 벨렘 지역은 3,000mm까지 된다. 사계절 위도에 따라 계절이 다르지만, 일단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봄 : 9월 22일부터 12월 21일 여름 : 12월 22일부터 3월 21일 가을 : 3월 22일부터 6월 21일 겨울 : 6월 22일부터 9월 21일 [편집] 행정 구역 이 부분의 본문은 브라질의 행정 구역입니다. 브라질은 26개의 주(포르투갈어: estados)와 1개의 연방구(포르투갈어: distrito federal)로 이루어져 있는 연방 국가이다. 최남단에 위치하였던 시스플라티나 주는 우루과이로 독립하였다. 브라질의 행정구역 북부지방 1.호라이마[Roraima] 2.아마파[Amapá] 3.아마조나스[Amazonas] 4.파라[Pará] 5.토칸칭스[Tocantins] 6.아크리[Acre] 7.혼도니아[Rondônia] 북동지방 8.마라냥[Maranhão] 9.피아우이[Piauí] 10.세아라[Ceará] 11.히우그란지두노르치[Rio Grande do Norte] 12.파라이바[Paraíba] 13.페르남부쿠[Pernambuco] 14.알라고아스[Alagoas] 15.세르지피[Sergipe] 16.바이아[Bahia] 중서지방 17.마투그로수[Mato Grosso] 18.고이아스[Goias] 19.연방구 (브라질리아)[Distrito Federal (Brasília)] 20.마투그로수두술 남동지방 21.미나스제라이스[Minas Gerais] 22.이스피리투산투[Espírito Santo] 23.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24.상파울루[São Paulo] 남부지방 25.파라나[Paraná] 26.산타카타리나[Santa Catarina] 27.히우그란지두술[Rio Grande do Sul] [편집] 군사 사우바도르 다 바이아 의 퍼레이드 브라질리아의 브라질 군 이 부분의 본문은 브라질의 군사입니다. 헌법에서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다. 브라질 해군은 프랑스제 항공 모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체 무기 생산기술이 있다. 1889년 공화제 혁명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주된 이유가 되어 군대는 전통적으로 정치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1920년대부터 “테넨치즈모”( 테넨테 = 중위에서 청년 장교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음)라는 혁신적인 청년 장교가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정치를 추진하려는 경향이 생겨 바르가스 체제의 설립에도 협력했다. 이후 1964년부터 1985년까지 군정 하에 있기도 했고, 민정 이관 시 큰 영향력을 정계에 남겼다. 그래서 아직도 군은 “브라질 최대의 야당”이라고 불리고 있다. 또한 브라질은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모두 연합국 측에 참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 연합군으로 참전했을 때,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육군을 유럽 전선(이탈리아 전선) 에 파견했다. 그 후 1965년 도미니카 공화국 내전의 치안 유지에 파견되었고, 미국 주도로 보쉬파 사회 개혁 정권의 붕괴에 적극적인 협력을 했다. 1982년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배하여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이 붕괴된 후 오랫동안 최대의 가상 적국으로 보고 있었던 아르헨티나와의 융화 정책을 실시하였고, 그때까지 계속된 군비 경쟁이 끝나 현재는 주변국과의 군사적 긴장 관계가 없어졌다. 그러나 국토가 넓기 때문에 여전히 남미 최대 규모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12개월 징병제를 깔고 있으며 전체 병력은 약 320,000명 정도이다. 육군, 해군, 공군 및 헌병이 존재한다. 군사 정권 시대에는 핵 개발 계획을 추진했지만, 1988년 아르헨티나와 함께 핵 계획의 포기를 선언했다. 최근에는 유엔의 PKO에 적극적으로 파견되어 있다. 또한 각종 군용기와 군용 차량의 국산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군용기는 남미 주변국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중동 국가, 오세아니아에도 수출되고 있다. 육군은 병력 189,000명을 가지고있다. PKO를 아이티에 파견하고 있다. 해군은 병력 32,900명을 가지고 있다. 2008년 현재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항공모함을 보유한 해군이다. 2007년, 핵 잠수함 건조 계획이 부상했다. 공군은 병력 65,300명을 가지고 있다. 주요 장비는 AMX 항공기, Embraer EMB 110 등이다. [편집] 외교 브라질은 1959년 일찍이 대한민국과 수교하였으며 1963년 무역, 이민협정을 체결하였다. 현재 브라질 한국 교민들과 한국의 여러기업 및 공공기관들이 진출해 있다. 북한과는 2001년에 수교해 각국에 상주 대사관이 설치되었다. 현재 브라질 선수들 중에는 K리그에 진출한 선수가 있으며 한국의 축구 선수들도 브라질에 진출하기도 하였다. 한국 교민에 대한 평가는 매우 높다. 브라질과 한국을 잇는 직항 노선은 없으며, 대체로 로스앤젤레스 (LA)를 경유하고,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을 경유해서 상파울루 구아룰류스 국제공항가지 가는 항공편은 대한항공에서만 운항한다. 브라질에 도착하는 일본인들(1937년) 일본과는 브라질에 약 180만명이라는 해외 최대 규모의 일본인 사회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도 있기 때문에 정치, 경제, 문화적인 면에서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브라질은 G4 국가로서 일본과 함께 국제연합 상임이사국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08년 4월 28일, 781명의 일본인이 고베항에서 브라질 이민을 떠났다. 배는 50일의 항해 끝에 1908년 6월 18일 브라질에 도착했다. 이를 기념하는 100주년 행사가 2008년에 열렸다. [2] 브라질의 주 중에 하나이며 브라질 최남단에 위치한 주인 시스플라티나 주는 현재 우루과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하여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 [편집] 경제 상파울루는 브라질의 금융 도시이며, 메가 시티이다. 브라질 제2의 도시 리우데자네이로 엠브라에르 EMJ-170LR 헤시피 IMF에 따르면 2010년 브라질의 GDP는 2조 235억 달러로 세계 8위이다.[3] 건국 이래 오랫동안, 영국과 미국,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주요 채무국이었으며, 70년대 경제 정책의 실수로, 또는 채무가 급증하였다. 1980년대에는 중남미에서 멕시코, 아르헨티나, 페루와 대등한 재정 파탄 국가의 하나로 꼽혔고, 인플레이션과 막대한 누적 채무를 겪었다. 1980년대 초반 세계적인 금리 상승을 계기로 브라질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해외 자본의 유입은 소강 상태였고, 국내 투자도 둔화되었다. 또한 대외 채무의 부담으로 공공부문의 적자가 증가하여 더욱 인플레이션을 가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1980년대 후반에는 1000% 이상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1992년에는 물가 상승률이 1.175%에 달했고, 1993년에는 2500%라는 엄청난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유발되었다. 그러나 전혀 인플레이션은 멈추지 않았고, 말기에는 그들을 미국 달러로 물건을 살 수 없어서 사실상 통화는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었다. 고통의 선택 끝에 브라질 정부는 당시의 통화인 크루를 총 4회에 걸쳐 화폐 개혁을 실시하여 통화의 가치를 무려 2조 7500억 분의 1의 인하를 단행하고 새로운 통화인 레알로 바꾸었다. 1994년이 되어 새로운 통화인 레알 함께 "레알 플랜"라는 달러 PEG제를 도입함으로써 간신히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데 성공했다. 1998년에는 국제통화기금의 구제 금융을 받기도 하는 등 여러번 경제 위기를 겪으며 세계 최고의 채무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었다. 그 후 1999년에 일어난 브라질 외환 위기는 한때는 국가를 부도 직전까지 몰고갔지만, IMF와 미국의 긴급 융자로 파탄은 막았다. 2003년부터 집권한 룰라가 이끄는 노동당 정권은 개발 도상국에 무역을 확대했고, 브라질은 오랫동안 지속된 누적 채무 문제를 해결하기에 나섰다. 천연자원 개발과 제조업의 발달로 경제가 안정되면서 2005년에는 전년도에 비해 국내 총생산이 약 31% 정도나 증가하기도 했다. 이후 경제 회복과 함께 2007년 국제통화기금에 채무를 갚고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돌아섰다. 현재는 경제규모 세계11위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였으며 앞으로도 성장이 기대되어 브릭스에 포함되기도 했다. 메르코수르, 남아메리카 국가 연합의 회원국이며, 현재는 러시아, 중국, 인도와 함께 BRICs라고 불리는 신흥경제국가군의 하나로 손꼽히며 경제 상황이 부활했다. 여객 및 화물수송의 85%를 도로수송에 의존하고 있으나, 국토가 광대하여 옛부터 항공운송이 성행하였고 또 긴 해안선과 풍부한 하천을 바탕으로 한 수상교통도 성행하고 있다. 중공업, 그 중에서도 항공산업이 발달하였고, 1969년 설립된 국책 회사인 엠브라에르는 현재 소형 제트기 시장의 절반 가까운 점유율을 자랑하며 일대 시장인 유럽이나 일본 등 아시아 각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되는 등 그 기술력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공중 위생, 교육 등 공공서비스의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낮고, 해안과 대륙 내부의 경제격차와 빈부격차가 심하지만, 경제와 재정의 호전을 배경으로 최근 급속히 개선되고 있고, 빈곤층의 생활 수준이 올라가 내수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GDP에 있어서 세금의 비율은 30%를 넘고 있어 BRICs 국가에서 돌출하고 있다. 이것은 빈곤계층에 대한 지원(식량 배급)를 위해 과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세율에 진저리를 내고 있는 부유층에서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으로 의료 및 복지 교육 수준 향상, 지역에 생활 기반의 정비가 착실히 진행되어 대다수의 시민 계층으로부터는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편집] 산업 [편집] 공업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천연 자원으로 브라질은 2004년도 국민총생산(GNP)이 세계 9위에 올라섰고, 남반구와 남미 국가들 중 최대의 경제 규모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950년대 이후 급속한 공업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경제 발전을 위해 군사 정권이 외자 도입 정책을 추구하였고, 1960년대 후반부터 매년 1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며 브라질 붐(싼 인건비에 숙련된 노동력, 풍부한 자원) 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따라 일본과 미국, 독일과 프랑스 등의 유럽 국가와 선진국에서 직접 투자에 의한 현지 생산 및 합작 기업 설립도 급증하였고 자동차 생산 및 조선, 제철은 항상 세계 10위권을 차지할 정도의 산업 국가가 되었지만, 1950년대 후반 당시의 주셀리누 쿠비체크 대통령이 내건 "50년 성장을 5년에"라는 구호 아래 시작된 수도 브라질리아 건설의 부담이나, 1970년대 초반의 오일쇼크, 또 외국 자본의 도입에 의한 대규모 자본 유출 등으로 경제가 파탄났다. 이 결과 1970년대 후반에는 경제가 침체하고 동시에 심각한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게 되었기 때문에, 이후 구젤(자동차 메이커)처럼 실적 악화로 도산되는 기업이 잇따랐다. 또한 경제 악화로 인해 1980년대에 걸쳐 크라이슬러와 야오한 등 다수의 외국 기업이 몰려옴과 동시에 선진국의 부채도 증가 했다. 현재는 브릭스라는 신흥경제국의 하나로 손꼽히며 경제가 부활하고, 지방 자본에 의한 산업 투자도 활발히 이루어지고있다. 브라질은 철강업이 산업의 30% 가량을 차지하며, 제조업 기술은 남아메리카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편집] 농업 브라질은 농업이 경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농업국가이다. 1950년대 이후 공업이 급속하게 성장했으나 아직까지 브라질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26% 가량이 농업에 종사할만큼 농업이 중요한 산업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업인이 소작농이어서 비교적 생산성이 낮다. [편집] 고무와 염료 농업은 한때 파우 브라질이라는 적갈색을 가진 단단하고 무거운 나무와 고무 생산을 중심으로 한 농업이 발달되었다. 파우 브라질은 당시 귀한 붉은 염료를 얻기 위해 빨간색 염료의 원료가 되는 이 나무의 경제적 가치가 높았다. 한 때 고갈된 적도 있었지만, 이후 농장에서 재배를 하여 지금도 파우 브라질로 만든 토산품 등을 현지에서 판매하고 있다. 19세기까지 브라질은 고무 재배를 독점했고, 강 중류 지역의 마나우스는 크게 번창하였으며 아마존의 중심에 오페라 하우스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페루의 이키토스와 볼리비아의 리베롤타를 비롯한 주변 국가에 고무 재배가 확대되었고, 또한 19세기 후반 영국의 말레이시아에 고무 플랜테이션을 통해 아마존의 고무 재배는 크게 퇴색되었다. [편집] 목축 목축이 번성하여, 최근에는 도시 근교의 농가 소득 향상과 더불어 집약적인 축산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상파울로 등 대도시 주변의 양계업 등은 현대적인 시스템 아래에서 행해지고 있다. 닭고기는 가공육을 중심으로 외국에 수출되지만, 쇠고기는 구제역 등의 검역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편집] 사탕수수 식민지에서 독립 후 제정기에 걸쳐서 브라질 북동부에서는 사탕수수의 재배 재배가 활발했다. 카리브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노예를 받아들였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늦은 시기인 1888년에 겨우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 주류 재배 작물도 덜 노동집약적인 사탕수수에서 커피로 옮겨 갔다. 사탕수수는 설탕의 원료가 될뿐만 아니라, 바이오 에탄올로 정제하여 휘발유의 대체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편집] 커피 커피 수출량은 세계 제1위이다. 2위인 베트남과도 거의 두 배 차이가 나며, 2008년 기준, 세계 10대 커피 생산 국가와 그 생산량은 다음과 같다.[4] 국가명 생산량(단위:톤) 국가명 생산량(단위:톤) 브라질 브라질 2,796,927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 273,400 베트남 베트남 1,067,400 멕시코 멕시코 265,817 콜롬비아 콜롬비아 688,680 인도 인도 262,000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682,938 과테말라 과테말라 248,614 페루 페루 273,780 우간다 우간다 265,000 미국 미국 273,780 탄자니아 탄자니아 265,000 커피 또한 노동집약적인 농업이며, 커피 생산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값싼 노동력을 쉽게 얻을 수 있고, 서리 내리기 어려운 넓은 고지대 지역의 특성도 커피 재배의 조건이다. 그러나 커피의 과잉 생산으로 국제 가격이 폭락하면서, 커피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하여, 옥수수, 콩, 사탕수수 등의 재배를 장려했다. 유럽에서 대량으로 이민자들 받아들여 주로 남동부 상파울루 주를 중심으로 커피 콩 재배가 진행되었다. 그 후 유럽과 이민자에 대한 대우를 둘러싸고 충돌하면서, 일본 등 아시아에서 이민자를 받아들였고, 1908년에 첫 번째 일본인 이민이 이루어졌다. [편집] 자원 브라질은 천연자원이 매우 풍부한 국가이다. 세계 최대의 농작물 생산국으로서 전체 수출의 30%를 농작물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커피 산업은 19세기 이후 브라질 경제를 뒷받침하기도 했다. 지하자원으로는 금, 은, 다이아몬드, 철광석, 크롬과 같은 광물이 많고 석유와 천연가스도 풍부하다. 세계 최대의 밀림인 아마존이 위치해 있어 연간 60여만 톤의 목재를 생산하는 임업 대국이기도 하다. 페트로 브라스는 1953년 경제적 독립을 위해 국영 기업으로 설립되었다. 이후 민영화에 성공하면서 기업은 급속히 확장하었고, 캐나다의 오일 메이저를 인수하여, 서양 오일 메이저와 경쟁할 존재가 되고 있다. 페트로 브라스는 심해 석유 개발 능력, 기술력에서 다른 메이저에 비해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미개발 심해 유전을 둘러싸고 고지로 개발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업으로 진행 중인 사탕수수 재배에 의한 바이오 에탄올 생산은 2007년 현재 유일하게 내수를 감당하고, 생산량에 여유가 생겨 수출을 할 상황이다. 바이오 에탄올 세계 시장에서 브라질이 차지하는 비중은 7% 이상에 달한다. 에너지 자원 확보에 대한 세계적으로 문제가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향후 브라질의 에너지 시장에서의 존재감이 2000년대 초부터 급격히 커지고 있다. 브라질은 수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수력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파라과이와 공동 건설한 국경 지대의 파라나 강 유역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이타이푸 댐에서 많은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편집] 사회 리우데자네이루 [편집] 도시 브라질의 주요 대도시별 인구와 순위는 다음과 같다. 브라질 대도시 순위 (인구 200만명 이상급) 브라질 전체 인구 약 2억 987만명 1.상파울루 : 2000만명 (동남부) 2.히우지자네이루 : 1400만명 (동남부) 3.살바도르 : 600만명 (동북부) 4.벨로리존치 : 590만명 (동남부) 5.헤시피 : 430만명 (동북부) 6.포르투알레그레 : 440~520만명 (남부) 7.포르탈레자 : 400만명 (동북부) 8.쿠리치바 : 370만명 (남부) 9.브라질리아 : 350만명 (중서부) 10.벨렝 : 270만명 (북부) 11.고이아니아 : 250만명 (중서부) 12.캄피나스 : 230만명 (동남부) 13.마나우스 : 230만명 (북부) 14.나탈 : 200만명 (동북부) [편집] 주민 브라질은 대표적인 다인종 국가로, 브라질 정부 통계에서 인종은 백인, 혼혈인(갈색인으로 분류하며 백인과 흑인의 혼혈이 다수임), 흑인, 황인, 브라질 원주민의 다섯 종류로 구분한다. 이러한 인종 구분은 혈통과 무관하게 본인의 진술에 의한다. 미국에서는 사람의 혈통을 기준으로 분류하므로, 흑인과 백인의 피가 섞여 있어도 일률적으로 흑인으로 보지만, 브라질에서는 이와 달리 단순히 사람의 피부색만을 보기 때문에 백인과 흑인의 혼혈이라도 피부색이 밝으면 백인으로 보며, 백인과 흑인의 혼혈을 별도로 분류하고 있다. 브라질 원주민. 백인은 포르투갈계와 기타 유럽계로 구분하나, 미국과 달리 이러한 통계를 별도로 내지는 않는다. 포르투갈계는 식민 시절부터 이주를 계속하였으며, 브라질이 독립한 뒤에도 상당히 많이 건너왔다. 독립 이후에는 포르투갈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많은 사람이 건너왔는데,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들어왔으며, 그밖에 독일과 폴란드에서 온 사람도 많으나, 여러 세대가 지나면서 이들 여러 계통의 백인의 피가 섞인 자손이 많아지게 되었다. 레바논과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후손도 많은데, 이들도 피부색에 따라 주로 백인으로 구분하고 있다. 흑인은 식민지 시절 들어온 노예의 후손이 다수이다. 혼혈인은 흑인과 백인, 기타 여러 인종의 혼혈이다. 황인은 일본에서 건너온 이주민의 후손이 다수이며, 그밖에 중국계와 한국계도 있다. 선주민인 인디오는 원주민으로 구분하고 있다. 2005년 정부 통계에 따르면, 백인이 약 50%, 흑인이 약 6%, 혼혈인이 약 43%, 기타 1%로 되어 있다.[5] [편집] 언어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는 주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는 달리 포르투갈어(브라질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신대륙에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이다. 영어 교육이 비교적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영어가 잘 통하지않는편이다. 주변에 에스파냐어를 쓰는 나라가 많으므로, 에스파냐어 사용도 늘고 있으며, 지역적으로 이탈리아어나 독일어가 사용되는 곳이 있다. 지역적인 차이가 크고, 빈부 격차도 심해서 교육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곳도 많아 문맹률이 높은 편이었으나, 최근 교육이 보급되고, 해방신학자들이 지배계급과 교회의 우민화에 대한 항의로 문맹이 심각했던 빈민거주지역에서 교육사업을 실시[6]하면서 문맹률은 많이 낮아졌다. [편집] 문화 브라질 문화는 인디오라는 투피 과라니계의 원주민과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이민자 등이 유입되어 만들어낸 다양한 문화의 모자이크라는 평가를 받는다. 예로부터 음악과 건축, 스포츠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이나 스포츠 선수, 예술가를 많이 배출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광고 표현 등에서도 최근에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포르투갈의 문화와 브라질의 문화를 상징하는 말로 "사우다지"라는 말이 있다. [편집] 음식 브라질 페이조아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들들의 식사였다는 페이조아다와 목동의 고기 요리였던 슈하스코, 바이아 지방의 무케카, 바타바, 카루루, 미나스 지방 투투아 미네이라 외에 또 러시아 계열의 요리인 비프 스트로가노프도 브라질 풍으로 융합되었다. 브라질 풍의 고로케인 코시냐나 아랍계의 키비, 파스태우(브라질 풍의 튀김 만두) 등 풍부한 고기와 야채, 해산물을 기본으로 한 브라질 요리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다. 남부 세 국가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 라플라타 주와 문화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과라니인들에게서 유래된 마테 차를 마시는 전통이 있다. 또한, 유럽 등에서 온 이민지들과 20세기 이후 일본인을 비롯한 아시아 이민자 등 다양한 인종이 융합되어 도시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와 독일 요리, 중국 요리와 일본 요리 등 다양한 나라의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이탈리아 요리 수준은 높게 평가받고 있다. 주로 독일계 이민자들이 가져온 맥주를 생산, 수출하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브라질에서 가열 처리한 세르베자 외에도 생맥주를 매우 선호하지만, 맥주 브랜드도 상당수가 있다. 브라질리아 [편집] 종교 국민의 약 64.6%가 로마 가톨릭 [7] 신자이고 세계에서 로마 가톨릭 신자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건너오게 된 흑인들의 영향으로 아프리카 토착 종교가 광범위하게 융합되어 있다. 국교는 없으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로마가톨릭교회 이외의 브라질 성공회, 개신교회, 불교, 이슬람교 신자도 있다. 브라질에서는 최근 개신교의 신도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반면 로마 가톨릭 신자의 비중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데, 성령운동을 강조하는 오순절교회가 가장 큰 교파이다.[8]이는 대부분 중남미 개신교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신교 목사들의 낮은 신학수준, 기독교 근본주의성향을 가진 미국 개신교회의 물량공세식 선교등의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한다.[9] [편집] 스포츠 상파울루 에스타지오 데 모룸비 호나우두 축구와 배구, F1 등 모터 스포츠와 브라질 유술 같은 무술이 강하기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운동에 수많은 세계 챔피언이 있으며, 유명한 선수를 많이 배출하고 있다. [편집] 축구 브라질은 체육 중에서도 축구가 가장 자리를 잡았는데 특히 축구를 단일종목으로 한 월드컵에서는 세계 최다인 5회를 우승하여 최강국으로 불리고 있다. 제1회 대회부터 본선에 연속 출전한 유일한 대표 국가이다. 또한 FIFA 랭킹 상위에 항상 위치하는 등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1950년 FIFA 월드컵을 개최한데 이어 2014년에 FIFA 월드컵을, 2016년에는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을 개최한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8강에서 네덜란드에게 2:1로 패하자 피파랭킹이 1위에서 3위로 떨어지고 만다. 클럽 선수권 대회 수준은 UEFA 챔피언스 리그 의 우승팀을 제치고 과거 세 번의 도요타 컵 챔피언이 된 상파울루 FC 외, 그레미우 등 세계 유수의 강호들이 있다. 축구 선수들도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와 레오, 자갈로, 가린샤, 펠레, 토스탄, 지코, 소크라치스, 호마리우, 카푸, 히바우두, 호베르투 카를로스,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카카 등 축구 역사에 남을 많은 선수들을 배출하고 있으며, 자타가 인정하는 축구 강국이다. 브라질 축구 국가 대표팀의 유니폼은 카나리아 옐로를 쓰고 있어서, 브라질 대표는 "카나리아 군단 "이라고 부른다. 포르투갈어로 "카나리아"라는 발음이 비슷한 단어 "카나랴(카나쟈)"이라는 것이 있는데, "바보(그룹)"라는 뜻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파악된다. 따라서 브라질에서는 브라질 대표를 이런 호칭을 하지 않는다. [편집] 교통 브라질의 철도·도로의 대부분이 대서양 연안지대에 집중하고 있어, 내륙 지방은 교통의 장애가 되고 있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 신수도 브라질리아의 건설과 병행하여 간선 도로망을 건설 확대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철도·도로가 발달되지 못했다. 브라질의 철도 총연장은 3만 3,484㎞이고 포장 도로는 131만 2,700㎞이다. 한편으로는 넓은 국토에 비해 철도와 도로가 부족하여 항공업의 발달을 촉구하여, 브라질에서는 항공이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고 있다. 아마존 강과 그 지류는 내륙의 교통 소통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10] [편집] 육상 알콜과 휘발유 두 급유기가 있는 주유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가 일반인들에게 보급됨에 따라 고속도로망이 급속히 발달했다. 자동차 연료로 1970년대 후반부터 정부 주도하 알콜이 보급되고 있으며, 많은 자동차 제조 업체가 알코올 연료 차량을 이용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주유소에서 알코올 연료 차량에 알콜을 넣을 수 있다. 최근에는 플렉스 연료 차량(휘발유와 알코올을 넣어도 움직이는 차)가 주목 받고 있다. 또한 현재는 선진국에 비해 배기가스 규제가 덜해 수도, 도시를 중심으로 배기 가스에 의한 대기 오염이 심각 해지고 있어 정체와 함께 대기 오염의 완화를 목표로 다양한 대책들이 시도되고 있다. 현재 도로 총 연장 거리는 165만km이고, 여객 및 화물 수송의 약 85%가 도로 수송에 의존하고 있다.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로, 브라질리아 등 대도시 주변의 도로 및 간선 도로의 대부분이 포장 정비 되어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 산업의 발달과 자동차 산업 보호를 위해 도로망의 정비에 중점을 둔 적도 있어, 해안 도시를 중심으로 고속도로망이 급속히 발달했다. 그러나 대기오염과 교통 체증 감소 등의 관점에서 최근에는 철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대도시의 지하철과 통근열차의 정비가 진행되고 있을뿐만 아니라, 상파울루 ~ 리우데자네이루 사이에 고속철도의 정비도 계획되고 있어, KTX도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잦은 KTX 고장으로 인해 걸림돌이 되고 있다. [11] [편집] 버스 트롤리 고속도로의 발전과 함께 침대 시설과 화장실, 에어컨 완비하여 장거리 버스 노선이 나라 곳곳에 운행하여, 쉽고, 저렴한 교통 수단으로 편리하게 이용되고 있다. 또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인접 국가들과의 장거리 정기 버스가 양국의 주요 도시 사이에서 운행되고 있다. 많은 도시에서 도시철도와 지하철 노선이 정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주요 시내교통 수단으로 시내버스를 사용하는 상파울루를 비롯한 일부 대도시에서는 트롤리 버스도 운행되고 있다. 대부분의 버스는 외국 자본과 민족 자본 기업에 의해 브라질 자국 생산되며, 연접 버스와 이층 버스, 인도 쪽뿐만 아니라 운전석 쪽도 승객용 출입문을 설치한 버스 등 다양한 차종이 운행되고 있다. 또한 그 대부분이 국외로 수출되고 있다. [편집] 철도 상파울로의 지하철 항공기와 버스의 장거리 이동망이 옛부터 갖추어져 자동차 산업 보호를 위해 도로망의 정비에 중점을 두었던 적도 있었다. 철도의 총 연장 거리는 2000년 현재 29,283km로 그 광대한 국토에 비해 적은 데다, 그 대부분이 해안 지역을 운행하고 있다. 또한, 철도의 화물운송 점유율은 20%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도시 간을 연결하는 장거리 철도뿐만 아니라 도시 근교의 철도망의 정비도 지연되었고,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로 등 대도시에서는 1970년대 이후 교통체증 해소와 에너지 절약, 배기가스에 의한 대기오염의 해소 등의 목적으로 지하철과 교외 통근 전동차의 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많은 차량이 국산이 아니라 일본과 독일 등 철도 선진국에서 수입되고 있다. [편집] 화보 Ponte estaiada Octavio Frias - Sao Paulo.jpg Corcovado statue01 2005-03-14.jpg Bh2.jpg Curitiba-jardim-botanico4.jpg Praia do Mucuripe.jpg Pelourinho, Salvador.jpg Cais Mauá Porto Alegre 2.jpg Teatro amazonas.jpg Belém city2.JPG Goiania-vaca-brava.jpg [편집] 주석 1.↑ Official Area (In Portuguese) IBGE: Instituto Brasileiro de Geografia e Estatística. Retrieved 2010-01-08. 2.↑ 김길호. “<김길호의 일본이야기>일본 브라질 이민 백년”, 《제주투데이》, 2008년 6월 23일 작성. 2010년 5월 1일 확인. 3.↑ IMF :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4.↑ http://faostat.fao.org/site/339/default.aspx 5.↑ Sintese_2006_semlinks.indd 6.↑ 불란서의 로마 가톨릭 사제인 아베 삐에르의 저서 《단순한 기쁨》에 의하면 브라질의 해방신학자 돔 헬더 까마라 대주교는 선교사들을 빈민지역에 보내어 글을 가르치게 함으로써 브라질 군사독재정권과 로마 가톨릭 교회의 우민화에 항의하였다. 7.↑ Censo Demográfico 2010: Características gerais da população, religião e pessoas com deficiência (In Portuguese). IBGE: Instituto Brasileiro de Geografia e Estatística. Retrieved on 2012-07-03. 8.↑ 《미션저널》2001년 여름호,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세계선교회(GMS). 9.↑ 《미션저널》2000년 겨울호,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세계선교회(GMS) 10.↑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브라질의 교통·도시〉 11.↑ 11개월새 30여건 고장·오작동…브라질·美 수주 악영향, 2011년 3월 1일 라틴 아메리카(Latin America)는 라틴어에 뿌리를 둔 로망스어군의 언어가 쓰이는 지역을 말한다. 리오그란데 강 이북의 앵글로아메리카가 게르만어파에 속하는 영어를 쓰는 것에 대비해서 사용하는 단어이다. 지정학적으로 중남미(中南美)라고도 부른다. 라틴아메리카의 정의는 매우 다양하다. 사회정치학적으로는 미국 이남의 독립국 -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서인도 제도, 남아메리카의 나라로 에스파냐어나 포르투갈어, 프랑스어나 이에 기반한 크레올어를 쓰는 나라를 말한다. 이들은 대부분, 메스티소, 물라토 등의 혼혈 인종이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아시아인 계통의 원주민은 소수에 불과하다. 지배 계층은 거의 백인이 차지하고 있으나, 명목상 원주민을 우대한다는 차원으로 혼혈 인종을 대거 기용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는 있다. 본래, 유럽인들의 자본 착취 대항해시대에 이들을 모두 식민지에 거머쥔 세력이 스페인의 콜럼부스를 비롯한 라틴 계통의 인종들이었기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편집] 나라 라틴 아메리카는 다음 나라들과 과테말라 니카라과 도미니카 공화국 멕시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우루과이 칠레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쿠바 파나마 파라과이 페루 다음 속령을 포함한다. 프랑스의 과들루프 마르티니크 생마르탱 생바르텔레미 프랑스령 기아나 미국의 푸에르토리코 여기에 가이아나, 벨리즈, 수리남, 포클랜드 제도 등을 넣기도 한다. 이 지역은 문화적이나 언어학적으로는 라틴아메리카에 속하지 않으나 다른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어 사실상 경제적·문화적으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편집] 언어 대부분의 나라에서 에스파냐어를 사용하여, 하나의 거대한 에스파냐어 사용권을 형성하고 있다.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인 나라로는 유일하게 브라질이 있으나, 브라질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나라이므로, 포르투갈어의 세력도 상당히 크다. 아이티 및 일부 프랑스 속령에서는 프랑스어가 사용되나, 라틴아메리카 전체에서는 그 비중이 낮다. 수리남, 벨리즈 등을 포함할 경우 네덜란드어와 영어가 일부 국가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편집] 읽을거리 남아메리카 남아메리카 공동체 메르코수르 안데스 공동체 중앙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공동 시장 서인도 제도 카리브 공동체 라틴유럽 [숨기기] v • d • e • h 세계의 대륙과 지역 에콰도르 공화국(스페인어: República del Ecuador 레푸블리카 델 에콰도르[*], 문화어: 에꽈도르)은 남아메리카 북서부에 있는 나라이다. 북으로는 콜롬비아, 남으로는 페루와 접경해 있다. 에콰도르는 스페인어로 "적도"라는 뜻이다. 본토에서 약 965km 떨어진 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를 포함한다. 수도는 키토이며, 이 나라의 최대 도시는 과야킬이다. 남아메리카에서 칠레와 함께 브라질과 국경이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목차 [숨기기] 1 자연 환경 1.1 지리 1.2 기후 1.3 생물 다양성 2 정치 3 주민 3.1 이민 3.2 종교 3.3 인구 밀도 4 시간 5 대외 관계 6 바깥 고리 [편집] 자연 환경 [편집] 지리 에콰도르는 지리상 세 지역으로 나뉘며, 여기에 더불어 태평양의 도서 지역이 있다. 해안(La Costa) : 에콰도르의 서부 저지와 태평양 해안 지역. 산지(La Sierra) : 에콰도르 중부에 남북으로 뻗어있는 안데스 고산 지대. 아마존(La Amazonia, 또는 El Oriente) : 에콰도르 동부의 아마존 우림 지역으로, 국토의 절반에 이르나 거주 인구는 총 인구의 5%도 안 된다. 도서 지역(Región Insular): 갈라파고스 제도로 에콰도르 본토에서 태평양으로 약 965km 떨어져있다. 에콰도르의 수도는 키토이며, 이곳은 산지 지역의 피친차 주에 있다. 전국 최대 도시는 과야스 주의 과야킬이다. 키토의 바로 남쪽에 있는 코토팍시는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활화산이다. 침보라소 산 꼭대기(해발 6,310m)는 지구 핵 중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표 지점인데, 지구는 완전한 球가 아니라, 계란 모양처럼 적도 지역이 약간 부푼 형태이기 때문이다. [편집] 기후 에콰도르는 그리 큰 나라는 아니지만, 기후는 고도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태평양 연안 지역은 열대 기후를 보이며 우기에 비가 많이 내린다. 안데스 고지는 온대 기후로 상대적으로 건조하며, 안데스 산맥의 동쪽에 있는 아마존 분지는 열대 지대이다. [편집] 생물 다양성 갈라파고스 거북 에콰도르는 세계에서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17개국 중 한곳이다. 대륙 지역에는 1,600여 종의 조류(세계 조류 종의 15%이다)가 서식하며,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38종 이상의 고유종이 산다. 식물종 25,000종이 있으며, 에콰도르에는 106종의 파충류, 138종의 양서류, 6,000종의 나비가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독특한 동물군으로 유명한데, 다윈 진화론이 탄생한 곳이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유네스코의 지정에도 불구하고 갈라파고스는 부정적 환경 효과로 위험에 처해있으며, 이곳의 이국적인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또 아마존 열대 우림의 석유 채굴로 수십억 갤런의 폐수, 가스, 원유가 이곳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토착 주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편집] 정치 현직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는 대통령제 대의 민주주의 공화국이며, 대통령은 정부 수반이자 국가 원수이고,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다. 정부는 삼권분립에 입각해 구성되어 행정, 입법, 사법이 분리된다. 에콰도르 헌법에 따라 대통령, 부통령, 의회 의원은 4년 임기이다. 대통령은 연임은 안되나 중임은 가능하며, 의회는 연임할 수 있다. 보통 선거를 실시하며, 18~65세 사이 성인 시민에 의무 투표제와 피선거권이 적용된다. 행정부에는 25개 부처가 있다. 각 주지사와 지방 공무원(시장, 시의회 의원 등)은 직선제로 뽑는다. 의회는 7월과 12월 휴회를 제외하고 일년 내내 열린다. 외교 분야에서 에콰도르는 국제 문제에 대해 다다적 접근을 크게 강조한다. 에콰도르는 국제 연합을 비롯한 여러 국제 기구의 회원국이며, 안데스 공동체, 라틴 아메리카 통합 연합, 라틴 아메리카 에너지 기구 등 여러 지역 기구에도 가입했다. [편집] 주민 도로에서 본 침보라소 화산. 에콰도르는 인종적으로 다양하다. 2007년 기준 가장 큰 인종 집단은 메스티소로 전체 중 55% 이하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25%이며, 주로 크리올인 백인은 15%이다. 주로 에스메랄다스나 임바부라 주에 사는 물라토와 삼보 같은 아프리카계 에콰도르인은 소수로 5% 정도있다. [편집] 이민 에스파냐,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등지와 미국, 캐나다, 칠레, 베네수엘라, 멕시코, 일본에는 상당한 규모의 에콰도르인 공동체가 있다. 페루나 볼리비아 같은 이웃 남아메리카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더 높은 임금을 위해 에콰도르로 이주했다. 중동이나 아시아(특히 중국과 일본), 북아메리카, 유럽에서도 많은 이주민이 오고 있다. 대개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 출신의 아랍계 에콰도르인들도 수 만명 규모의 집단을 이룬다. 이들은 상업,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데, 이 나라의 제2 도시 태평양 항구 과야킬에 많이 산다. 에콰도르에는 이탈리아인,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그리스계 에콰도르인 소집단도 볼 수 있다. 에콰도르의 유대인들은 500명도 안되는데, 대개 독일이나 이탈리아계이다. 에콰도르에는 112,000명의 독일어 사용자가 있으며, 대개 19세기 말 독일 이주민의 후손들이다. 최근 에콰도르는 콜롬비아의 내전을 피해 콜롬비아 난민들이 들어오고 있다. 동아시아계 라틴인 집단은 약 2,500여명인데, 대부분 19세기 말 광부, 농부, 어부로 일하던 중국과 일본 이민자들의 후손이다. [편집] 종교 에콰도르인의 95%는 로마 가톨릭 교회이며, 4%는 개신교이다. 시골 지역에는 토착 신앙과 로마 가톨릭 교회가 혼합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축제나 연중 행사는 종교 행사에서 나온 것으로, 온갖 의식과 상징이 뒤섞여있다. 에콰도르의 유대인 집단 중 키토에 사는 사람은 약 500여명 정도이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이 학업을 위해 이스라엘이나 타지로 가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이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들 공동체에는 유대인의 중심인 유대교 회당(synagogue), 컨트리 클럽, 공동묘지가 있으며, 이들은 유대교, 유대 역사,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아인슈타인 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그 밖에 정교회나 토착 종교, 이슬람, 불교, 바하이 신앙도 소수나마 존재한다. 1999년 과야킬에 모르몬 교회가 건설되었다. [편집] 인구 밀도 라스 페냐스 인근, 과야킬의 상징적인 장소. 대다수의 에콰도르 사람은 안데스 산맥의 중부 내륙이나 태평양 연안에 살고 있다. 산맥 동쪽의 열대 우림 지역(El Oriente)에는 인구 밀도가 희박하며, 전체 인구의 3%만이 살고 있다. (2008년 기준) 도시 인구 과야킬 2,090,000 키토 1,482,000 쿠엔카 304,000 마찰라 217,000 산토 도밍고 데 로스 콜로라도스 212,000 포르토비에호 195,000 만타 193,000 엘로이 알파로 184,000 암바토 169,000 리오밤바 140,000 [편집] 시간 갈라파고스 제도를 제외한 에콰도르 전역은 미국 동부와 같은 시간대를 쓴다. 하지만 미국처럼 서머타임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편집] 대외 관계 1969년 에콰도르는 콜롬비아, 칠레, 볼리비아, 페루와 함께 안데스 공동시장(Andean Community of Nations)을 설립하였다.(베네수엘라는 1973년에 가입, 칠레는 1976년에 탈퇴) 한국전쟁때는 당시 UN비상임이사국으로서 UN의 대한(對韓)지원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으며 여러 물자를 원조하였다. 대한민국 단독수교국이다. [편집] 바깥 고리 에콰도르 대통령 홈페이지 (영어) 에콰도르 역사 (영어) Galapagos, 에콰도르 에콰도르 한인회 LocationAmericas.png 아메리카 남아메리카 · 북아메리카 · 중앙아메리카 · 카리브 제도 · 라틴 아메리카 · 앵글로아메리카 LocationAsia.png 아시아 남아시아 · 동아시아 (동북아시아) · 동남아시아 · 북아시아 · 서남아시아 · 중앙아시아 LocationAfrica.png 아프리카 남아프리카 · 동아프리카 · 북아프리카 · 서아프리카 · 중앙아프리카 LocationOceania.png 오세아니아 오스트랄라시아 (오스트레일리아) · 멜라네시아 · 미크로네시아 · 폴리네시아 LocationEurope.png 유럽 남유럽 · 동유럽 · 북유럽 · 서유럽 · 중앙유럽 (비셰그라드 그룹 · 알프스 그룹) LocationWorld.png [편집] 바깥 고리 Commons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 미디어 자료와 분류가 있습니다. 브라질 (분류) 6.3 종교 7 문화 7.1 문학 7.2 음악 7.3 건축 7.4 요리 7.5 미디어와 통신 8 교육 9 군사 10 대외관계 11 기타 주제 12 주석 13 바깥 고리 13.1 핀란드 13.2 대한민국 [편집]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핀란드의 역사입니다. 기원전 수천년 무렵에 중앙아시아 지역으로부터 우랄어족 언어를 쓰는 핀족이 서진을 계속하여 기원후 1세기에 지금의 핀란드 남부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중엽, 스웨덴 왕 에리크 9세의 십자군이 핀란드에 쳐들어 옴으로써 스웨덴의 핀란드 지배 윤곽이 잡혔다. 이후 스웨덴의 역대 왕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핀란드에서 스웨덴 영토를 넓혀왔으며, 1397년 포메라니아의 에리크가 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의 연합왕으로 즉위할 때 핀란드도 이에 편입되었다. 1523년 구스타브 1세 바사는 스웨덴을 안정된 독립 왕국으로 만들면서 핀란드를 이에 포함시켰다. 이후 스웨덴과 함께 핀란드에서도 루터교로 개종하는 종교개혁이 일어났는데, 여기에는 독일 비텐베르크에서 마르틴 루터에게 수학한 미카엘 아그리콜라의 공이 컸다. 17세기 초에 스웨덴 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핀란드를 동방 전초 기지로 활용하였다. 크리스티나 여왕은 핀란드에서 문예를 크게 진흥시켜 투르쿠 대학이 이 무렵에 세워졌다. 스웨덴 왕 칼 12세의 무리한 군사정책으로 시작된 대북방 전쟁(1700~1721년)에서 핀란드의 국토는 러시아의 대대적 침공으로 일대 타격을 입었다. 구스타브 3세가 러시아와 전쟁(1788~1790년)을 하는 틈을 타 핀란드 장교들이 무장봉기하기도 했다. 나폴레옹 전쟁 중에 핀란드 영토를 둘러싼 열강의 외교전이 펼쳐진 끝에 1809년 러시아가 핀란드를 점령하였고, 대공국이라는 이름으로 통치하였다. 이에 맞서 핀란드인의 국권 회복 운동이 점차 불붙었고 엘리아스 뢴로트는 1835년부터 1849년 사이에 서사시 칼레발라를 썼다. [편집] 20세기 초반 제1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17년에 핀란드는 독일제국의 공국인 헤센카셀(Hessen-Kassel)가를 핀란드의 왕가로 받아들여 독일제국에서 책봉을 받는 형식상의 제후국이 되었다. 1918년 1월 27일 소련의 지원을 받은 핀란드 적군(공산군)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독일제국의 지원을 받은 핀란드 백군(정부군)이 5월 15일 이를 진압하였다. 한편 그 해 11월 11일 독일 제국이 항복함으로써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핀란드는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직전부터 소련의 위협이 다시 커져 국가의 생존을 걸고 소련과 2차례에 걸쳐 전쟁(겨울 전쟁·계속 전쟁)을 벌였다. 명장 칼 구스타프 만네르헤임 장군의 지휘 아래 전 국력을 총동원하여 소련에 맞서 싸웠고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으나, 국력의 열세 때문에 끝내 패배로 끝났다. 이전부터 핀란드는 소련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했는데, 이 전쟁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편집] 냉전 시대 전쟁이 끝난 뒤에 국토는 다시 재건되었고 핀란드 정부는 소련과 서유럽 사이에서 중립을 표방하면서 경제발전에 힘을 쏟았다. 소련의 의향에 따라 마셜 플랜을 받지 못했고 북대서양 조약기구와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하지 않았다. 자유 민주 정권을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경제권에 속하는 경제정책을 쓰고, 외교, 국방 측면에서 공산권과 가까웠지만,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가맹하지 않았다. [편집] 현대 이 미묘한 상황 하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독립과 평화를 유지했다. 소련 붕괴후 서방 진영에 접근하여, 1994년에는 EU 가입에 합의하고, 2000년에는 유로를 도입했다. [편집] 정치 에두스쿤타핀란드어: Eduskunta), 핀란드의 의회 핀란드의 정치제도는 의원 내각제를 기초로 하였지만, 대통령에게도 일정한 권한이 있다. 대통령의 임기는 6년이며,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의회가 선출하는 총리로 대표되는 내각이 가장 큰 행정 권한을 지닌다. 따라서 의회 민주주의 국가이며, 의회가 국권의 최고 기관이다. 정치 형태는 해방 이후 반대통령제와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현재보다 더 큰 권력이 있었지만, 1990년 이후 의원내각제로의 전환을 목적으로하는 헌법 개정이 몇 차례 이루어져, 행정권의 비중이 대통령에서 내각의 총리에게 대폭 위임되었다. 최고 입법기관인 의회(핀란드어: Eduskunta, 스웨덴어: Riksdag)는 단원제로 200명의 의원들로 구성된다. 국회의원 임기는 4년이며, 15개 선거구로 나누어 개방식 비례 대표제 선거로 뽑힌다. 의회는 헌법을 고치거나 내각을 해임시키거나 대통령이 발동하는 거부권을 무효화할 권한이 있다. 유럽 최초로 보통선거를 실시했다. 1906년 보통 선거권이 실시된 이후 핀란드 국회는 우파인 국민연합당, 농민당과 좌파인 사회민주당, 좌익연합 등의 정당이 지배해왔다. 핀란드는 소련의 영향력이 컸던 냉전 시대에도 민주주의를 지켜왔다. 행정부의 장인 총리는 부총리와 장관과 함께 내각을 구성한다. 각 각료는 의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총리는 총선 후 각당 대표의 협상 결과에 따라 대통령이 총리 후보를 지명하고 의회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은 후, 대통령의 임명을 거쳐 취임한다. 다른 각료는 총리의 임명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한다. 내정 면에서는 선진적인 북유럽 형의 복지국가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전후 배상금 등의 지불과 같은 외적인 요소로 노동자의 권리 향상은 우선 순위가 밀렸지만, 급속하게 복지 국가 건설에 매진하여 북유럽 형의 사회에 근접하였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정치적 부패가 적은 나라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2008년 민간 활동 단체인 "국제 투명성 기구"에 의한 정치 부패 인식 지수 조사에서는 2004년까지 1위를 지켰지만, 2009년에는 6위로 떨어졌다. 핀란드의 헌법에서 특이한 점은 헌법재판소가 없고, 대법원에게는 어떤 법률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핀란드 이외에 헌법재판소가 없는 나라는 네덜란드와 성문 헌법이 없는 영국뿐이다. [편집] 행정 구역 Map of Finland with provinces (numbered).png 이 부분의 본문은 핀란드의 행정 구역입니다. 오늘날 핀란드는 6개의 주(래니 lääni, 복수 래닛 läänit)로 다음과 같이 나뉜다. 1.남핀란드 주 2.서핀란드 주 3.동핀란드 주 4.오울루 주 5.라피 주 6.올란드 주 올란드 제도는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분야에서 상당한 자치를 누리고 있다. [편집] 지리 라플란드 남동부의 풍경 북쪽은 노르웨이, 서쪽으로는 스웨덴과 국경을 접하고있다. 서쪽은 보트니아 만, 남쪽은 발트 해, 남쪽은 핀란드 만과 맞닿아 있다. 보스 만 건너편은 스웨덴, 핀란드 만 건너편은 에스토니아이다. 동쪽에서 남쪽 걸쳐 러시아와 육로로 국경을 접하고있다. 또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국토의 대부분은 평탄한 지형으로 빙하에 깎여 형성된 호수가 무수히 흩어져 있다. 식물은 타이가와 이끼가 많다. 또한 숲은 다양한 종류의 식물군이 서식한다. 핀란드의 지형은 대체로 평평하며 최고봉은 북쪽 사미 주 해발 1,328미터인 할티툰투리 산이다. 핀란드는 호수 이외에도 육지의 68%가 북방 침엽수림으로 덮여 있다. 섬들은 대부분 서남쪽에 있다. 핀란드는 호수와 섬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호수와 섬이 많다. 호수 187,888개와 섬 179,584개가 있다. 사이마 호수는 유럽에서 6번째로 크다. 핀란드에 있는 큰 호수는 다음과 같다. 네시 호수 빠이엔네 호수 사이마 호수(Saimaa) 오리 호수 삐에리넨 호수 오울루 호수 로카 호수 이나리 호수 핀란드 국토의 4분의 1 정도는 북극권에 있어 여름에는 백야 현상이 관찰된다. 핀란드 최북단에서는 여름에는 73일 동안 해가 지지 않고, 겨울에는 51일 동안 해가 뜨지 않는다. [편집] 경제 이 부분의 본문은 핀란드의 경제입니다. 핀란드 최대 기업 노키아의 본사 핀란드는 이웃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했기 때문에 1860년 대기근과 같은 경제적 변동에 취약한 나라였다. 1930년대까지 핀란드의 산업은 농업이 대부분이었고, 1950년대까지도 인구의 절반 이상이 1차산업에 종사했다. 2차대전 이후, 영국, 프랑스 등과 같은 나라들이 국유화를 진행할 때에도, 핀란드는 국유화를 기피했다. 보호무역주의가 실패한 후, 1973년 유럽공동체와의 자유무역을 위해 무역장벽을 완화하고, 산업의 시장경쟁력을 강화했다. 1980년대에 빚에 바탕을 둔 거품경제가 무너짐으로써 1991년에서 1993년까지 심각한 경기 후퇴가 있었다. 인구가 대한민국의 1/10에 불과한 핀란드는 1980년대 이후 농업 및 임업 중심의 경제 체제에서 휴대 전화의 생산량이 세계 1위에 오르는 등 첨단산업을 핵심으로 하는 산업 선진국으로 현저한 변화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2008년 현재, 종사자별로 농림 4.5%, 공업 18.3%, 건설 7.3%, 상업 16%, 재무·보험 14.5%, 교통·통신 7%, 공공 서비스 32.4%로 구성되어 있다. 서비스 산업이 전체 경제의 65.7%를 차지하고, 공업이 31.4%를 차지한다. 주요 공업 부문으로는 전자 21.6%, 기계·자동차·금속공업 21.1%, 삼림공업 13.3%, 화학공업 10.9% 등이 있다. 150년 전 제지업체로 시작한 노키아(NOKIA)와 리눅스(Linux)로 유명하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경쟁력 보고서에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년 연속 선두가 되었다.(2002년 2위로 발표되었다가 재평가 후 1위로 수정). 여성의 노동력화는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법률가, 의사는 여성이 절반을 차지하고있다. 기업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여성도 늘고 있지만, 남성에 비하면 아직 적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정규직으로 고용되기 어려운 경향이 있고, 젊은 여성에 계약직 일자리가 많다.(20대 여성의 4%가 파견 사원). 타임 뱅크 제도를 적용하여 바쁜 시기에 근무하여 바쁘지 않은 때 여가 시간을 쓸 수 있는 제도도 존재한다. 1994년에 16.6%까지 상승한 실업률은 불경기에서 벗어나 해마다 개선되고 있으며, 2006년에는 7.7%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GDP와 구매력이 증가하면서 러시아와 발트 삼국에서 유입되는 노동자의 증가로 일을 찾지 못해 매춘부 같은 성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증가 추세에 있다. 2011년 현재 1인당 명목 gdp는 49,350 달러, 국내 총생산량은 약 1700억 달러이다. [편집] 국민 [편집] 인구 통계 민족 비율은 핀란드인이 93%, 스웨덴인이 6%, 사미인, 러시아인과 기타 민족은 1%를 차지한다. [편집] 언어 핀란드어가 공용어이나 옛 스웨덴의 식민지배 영향으로 스웨덴어도 공용어로 사용된다. 모든 도로 표지판, 거리의 이름, 경고문 등이 양쪽 언어로 표기되지만 대부분, 일상생활에서는 핀란드어가 주로 쓰인다. 사미어는 북부에서 쓰이고, 스웨덴어는 대부분 남서부의 올란드 제도에서 쓰인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영어에 능통하고 일부는 독일어나 러시아어 역시 구사한다. 소수는 에스토니아어를 쓰는 경우도 있다. [편집] 종교 종교는 개신교(루터교)가 89%, 동방 정교회가 1%, 무종교 9%, 기타(대부분이 이슬람교). [편집] 문화 미카엘 아그리콜라 [편집] 문학 최초의 핀란드어 책을 쓰고 신약성서를 핀란드어로 번역한 투르쿠의 주교 미카엘 아그리콜라(1510~1557년경)는 핀란드 문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진다. 19세기에 엘리아스 뢴로트가 집필한 핀란드의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는 핀란드 전통 문화에 대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소설가 프란스 에밀 실란패는 1939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소설가 미카 발타리(Mika Waltari)도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편집] 음악 음악가로는 《핀란디아》를 작곡한 장 시벨리우스가 유명하다. 핀란드 전통 음악에는 하프와 비슷한 현악기인 칸텔레가 쓰인다. 또한 나이트위시, 소나타 아티카 등 헤비 메탈 음악도 인기를 얻고 있다. [편집] 건축 핀란드는 또 알바르 알토(Alvar Aalto)를 비롯한 유명한 건축가를 많이 배출하였다. 사우나(sauna)는 핀란드의 전통어이다. “사우나”는 핀란드어 중에서 국제적으로 쓰이는 낱말 중의 하나이다. 사우나는 달궈진 돌에 물을 껴얹어 생기는 수증기를 이용하는데, 섭씨 90도에서 100도까지 상승한다. [편집] 요리 생강 쿠키는 크리스마스 전 날에 만들어 크리스마스 시즌 내내 먹는 음식이다. 보통 '글뢰기'라고 하는 매콤한 음료와 함께 먹는데 어른들의 경우 보드카에 섞어 먹는다. [편집] 미디어와 통신 100개 이상의 신문사가 있고, 300개의 잡지, 2000개 이상의 전문지, 60개의 라디오 방송국, 5개의 국영 라디오 채널, 5개의 디지털 라디오 채널이 있다. 매년 30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고, 15,000권의 책이 출판되며, 1000만장의 음반이 판매된다.[1] 국영 방송사인 YLE는 5개의 채널과 15개의 라디오 채널을 5개의 언어로 송신한다. 약 85%의 국민들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2009년을 기준으로 180만명이 이상이 광대역 인터넷에 접속한다.[2] [편집] 교육 이 부분의 본문은 핀란드의 교육입니다. 올란드 제도를 제외하고 학교에서는 핀란드어가 필수이며, 스웨덴어도 필수로 지정되어 있고, 영어 및 기타 언어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스웨덴계 국민은 어려서부터 TV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핀란드어를 접하게 되고, 보통 종합학교 7학년부터 학교에서 스웨덴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현재는 스웨덴어보다 영어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종합학교 3학년 정도부터 영어 수업을 시작한다. 또한 종합학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합친 과정으로 9년)에서도 다른 외국어를 선택 과목으로 이수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어 과목 교육 과정 등은 지자체와 학교마다 다를 수 있다. 국가의 외국어에 대한 관심은 전반적으로 높기 때문에 4 ~ 5개 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핀란드인도 많다. 핀란드에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구별이 없으며 학교 제도는 종합학교를 9년간 다니고 고등학교에 3년간 다니는, 일명 9-3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종합학교 9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 사이에 진로를 찾기 위한 1년간의 휴학을 채택하고 있다. 대학은 모두 국립으로 비교적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핀란드의 교육 수준은 세계 교육계에서 "핀란드 메서드"로 주목할만큼 수준이 높다. 학생들은 경쟁에 의한 상대 평가가 아니라 달성도에 의해 평가되는 절대 평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학력의 차이를 무시한 평등 교육이 아니며, 고등학교는 종합학교 중등반 성적에 따라 지원을 할 수 있다. 또한, 종합학교의 교육에 주목할만한 것은 성적이 낮은 학생이 특별 학급에 배정되거나, 보충 수업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학력을 차별화하여, 저학력 학생에 대한 개별 교육으로 뒤떨어진 학업성취도를 보충해 줌으로써 학생이 학교의 인형으로 전락되는 것을 방지하는 제도가 핀란드 교육의 특징이다. 유네스코의 규정에 따른 고등 교육 기관 (대학 및 기타 고등 교육 기관 과정)의 진학률은 2004년도를 기준으로 세계 두 번째로 87%이다. 2004년도에 열린 OECD의 PISA(학업능력평가)에서는 한국, 일본, 홍콩 등 교육열이 높은 국가가 유럽 선진국을 제치고 학력 세계 제일을 기록하였지만, OECD 조사 자체에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PISA는 (1) 독해 (2) 수학 능력 (3) 과학 문맹률이라는 세 분야에 대해서만 57 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하였다. 핀란드 학교는 주 5일제를 적용하며, 교사는 대학 졸업이 기본이다.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에 대한 지원이 강력하며, 의무 교육이지만 유급 제도가 있으며,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대다수 학교의 학비가 무료이다. 한 교실을 담당하는 교사가 1명이 아니라 3명이다. [편집] 군사 핀란드 독립기념일의 레오파드 2A4 전차 행진 FNS "한코" 하미나급 미사일 고속정 핀란드에서 제조한 F-18 전투기상비군-30,000명 직업 군인-20,000명 최대 동원 가능수-60,000명 육군-30,000명 해군-11,000명 공군-9,000명 군사비- GDP의 2% 3군 이외에 인원 5000명 가량의 국경수비대가 별도로 짜여져 있는데 평상시에는 내무부 지휘 아래에 있지만, 유사시에는 군으로 통합된다. 복무기간은 10∼12개월가량으로, 18살 이상의 남자에 대해 징병제를 실시한다. 여성과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 신도들(종교법인)은 면제 된다. 100명당 소형무기 소유율이 2007년 현재 미국, 예멘 다음의 세계 3위 수준이다. 냉전 시대에는 소련제의 미그 21 전투기와 AK 소총, T-54/55과 T-72 전차와 중립국의 스웨덴제 서브 35 도라켄 전투기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현재는 미국에서 구매한 F/A-18 호넷 전투공격기, 독일제 레오파드 2 전차 등을 갖추고 있다. [편집] 대외관계 Broom icon.svg 이 문서는 위키백과의 편집 지침에 맞춰 다듬어야 합니다. 더 좋은 문서가 되도록 문서 수정을 도와주세요.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대한관계 남북한 동시수교국으로 1973년에 외교관계를 맺었다. 남한과는 1973년 8월 24일에 외교관계를 맺었다. 핀란드는 한국을 1973년 4월 13일 승인하였다. 핀란드는 서울에 대사관을, 한국은 헬싱키에 대사관을 각각 두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인 남익경이 핀란드 축구 리그에 진출해 있다. 현재 핀란드-한국 간 항공로는 인천국제공항에서 헬싱키 반타 국제공항까지 가는 핀에어 항공편이 운항하고 있다. 러시아와의 관계 러시아와는 대체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적도 있어서 나쁜 관계도 가지고 있다. 냉전시기에는 소련과의 관계에선 친소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했지만, 소련해체 이후에는 서방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 핀란드는 일본과는 우호협력관계에 서있으며, 국제 사회상에도 일본은 핀란드의 입장을 지지해왔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때에는 추축국의 편에서 같이 싸우기도 하였으며, 대립 관계에 있기도 하였다. 지금도 핀란드는 일본과의 관계에 좋은 위치를 하고 있다. 현재 일본과 핀란드는 일본항공과 핀에어 항공편이 운항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 중국과의 관계는 매우 좋다. [편집] 기타 주제 핀란드의 통신 핀란드의 교통 핀란드의 군대 핀란드의 외교관계 핀란드의 공휴일 노키아 핀란드의 대표적인 회사 [편집] 주석 1.↑ http://finland.fi/public/default.aspx?contentid=162833&contentlan=2&culture=en-US 2.↑ http://www.stat.fi/til/sutivi/2007/sutivi_2007_2007-09-28_tie_001_en.html [편집] 바깥 고리 발트 해(독일어: Baltisches Meer, 라트비아어: Baltijas jūra, 리투아니아어: Baltijos jūra, 폴란드어: Morze Bałtyckie or Bałtyk, 러시아어: Балтийское море, 문화어: 발뜨해)는 북유럽의 바다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북유럽, 동유럽, 중앙유럽, 그리고 덴마크의 섬들로 둘러싸인 바다를 말한다. 카테가트 해협과 스카게라크 해협을 통해 북해·대서양과 연결되어 있다. 백해-발트 해 운하를 통해 백해와, 킬 운하를 통해 북해와 바로 연결된다. 목차 [숨기기] 1 이름 2 지리와 자연 2.1 측량 2.2 해빙 2.3 환경 3 지도 4 역사 5 발트해 연안국 6 섬 7 도시 8 주석 9 읽을거리 [편집] 이름 고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게르만족의 분파인 수에비족의 이름을 빌어 수에비 해(라틴어: Mare Suebicum)라 불렀다.[1] 발트해라는 이름은 17세기 독일의 연대기 작가 브레멘의 아담의 기록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이름은 덴마크에 있는 릴레벨트 해협에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라틴어 balteus[2]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3] 어느쪽이 되었든 발트해라는 이름은 허리띠를 뜻하는 덴마크어 bælte와 관련이 있다. 브레멘의 아담은 퓐 섬을 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실린 전설의 섬 발티아와 연결지어 이런 이름을 붙였으리라 여겨지고 있다.[4] 중세 이래 이 바다의 이름은 언어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불려왔다. 발트해라는 이름이 공식적인 이름이 된 것은 19세기 이후이다. 언어별로 발트해를 부르는 이름은 다음과 같다. 영어를 제외한 게르만어파에서는 동해라고 부른다. 네덜란드어(Oostzee), 노르웨이어(Østersjøen), 덴마크어(Østersøen), 독일어(Ostsee), 스웨덴어(Östersjön), 아이슬란드어와 페로어(Eystrasalt). 핀우고르어군에 속하는 에스토니아어에서는 에스토니아의 서쪽에 있는 바다라고 하여 서해(Läänemeri)라고 부른다. 반면 핀란드어에서는 스웨덴어를 차용하여 동해(Itämeri)라고 한다. 발트 해라고 부르는 언어에는 다음이 있다. 영어(Baltic sea), 라틴어(Mare Balticum), 로망스어군의 프랑스어(Mer Baltique), 이탈리아어(Mare Baltico), 루마니아어(Marea Baltică), 스페인어(Mar Báltico), 슬라브어파의 폴란드어(Morze Bałtyckie or Bałtyk), 카슈브어(Bôłt), 러시아어(Балтийское море), 발트어파의 라트비아어(Baltijas jūra), 리투아니아어(Baltijos jūra). [편집] 지리와 자연 겨울의 발트 해 발트해는 육지에 둘러싸인 염수이다. 입구가 윌란 반도로 막혀 있어 거의 내해나 다름없기 때문에 조석 간만의 차가 거의 없다. 하천으로부터의 풍부한 하천수의 유입과 냉량한 기후로 인한 증발량이 적어 0.6~0.3%의 낮은 염분 함유량을 나타낸다. [편집] 측량 발트 해 는 길이 1600km, 폭 193km, 평균 수심 55m이다. 가장 깊은 곳은 459m(1506 ft)이다. 면적은 약 377,000km², 체적은 약 21,000 km³이다. 둘레는 약 8000km이다. [편집] 해빙 발트해는 지구의 북반구 고위도에 위치하여 겨울동안 많은 지역이 얼어붙는다. 보트니아 만과 핀란드 만, 리가 만을 포함한 최대 45%의 지역이 겨울에 얼어붙는다. 보트니아만 북부에서 생기기 시작한 얼음은 1월이 되면 보트니아 만 전체로 퍼진다. 1월 말이 되면 핀란드 만과 리가만도 얼게 된다. 겨울철에 형성된 해빙은 2월 - 3월 까지도 존재한다. 보트니아 만 북부의 경우 얼음의 두깨가 70cm이상이 된다. 얼음이 어는 정도는 겨울철 기온에 따라 다르다. 1703년 겨울에는 덴마크 해협까지 얼어붙은 적이 있는가 하면 1708년 겨울에는 보트니아 만과 리가 만 정도만 얼어붙고 다른 지역은 얼지 않기도 하였다. 2007년 겨울에는 3월이 되기 전에 모든 지역의 얼음이 녹았다.[5] 일반적으로 핀란드 만의 경우 4월 말에 얼음이 녹으며 보트니아 만의 경우 늦어도 6월 초에는 얼음이 사라진다. [편집] 환경 부영양화로 인해 2001년 6월에 발생한 적조현상 발트해는 하나의 거대한 만과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어, 수질 오염에 취약하다. 1970년 룬트홀름은 발트해의 심층부에서 산소가 급격하게 줄고 인이 늘어나 부영양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고하였다. 1968년 환경 조사에서는 황화수소마저 검출되었다.[6] 발트해 연안의 국가들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발트해 어젠다 21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유네스코와 협력하여 발트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발트해의 수질, 대기 등에 대한 교육자료를 제공하고 있다.[7] 또한 지구온난화에 의한 영향도 나타나, 지난 200년간 연평균 기온은 1도 정도 상승하였고 해수면 역시 20cm 정도 상승하였다. 또한 매년 얼음이 어는 지역이 줄어들고 있다.[8] [편집] 지도 아시아의 주요 지리 갠지스 강 고다바리 강 고비 사막 남중국해 노르웨이 해 뉴기니 섬 도나우 강 동시베리아 해 동중국해 동해 둥베이 평원 랍테프 해 레나 강 마르마라 해 말레이 반도 메콩 강 몰디브 제도 바렌츠 해 바이칼 호 발리 섬 발트 해 백해 벵골 만 보르네오 섬 북극해 북해 볼가 강 브라마푸트라 강 사할린 섬 북드비나 강 수마트라 섬 술라웨시 섬 스칸디나비아 반도 시나이 반도 싱가포르 섬 아나톨리아 아덴 만 아라비아 반도 아라비아 해 아랄 해 아무르 강 아조프 해 아프리카의 뿔 알타이 산맥 에게 해 예니세이 강 오만 만 오비 강 오스트레일리아 오호츠크 해 우랄 강 우랄 산맥 유프라테스 강 이란 고원 인더스 강 인도 아대륙 인디기르카 강 인도양 (북부) 인도차이나 반도 일본 열도 자와 섬 주 강 창 강 치롄 산맥 카라 해 카라코람 카스피 해 캄차카 반도 캅카스 산맥 캐롤라인 제도 콜리마 강 쿤룬 산맥 크리스마스 섬 타클라마칸 사막 타이 만 태평양 (북부) 톈산 산맥 통킹 만 티그리스 강 티모르 섬 티베트 고원 파미르 페르시아 만 페초라 강 필리핀 제도 필리핀 해 한반도 홋카이도 홍해 화베이 평원 황하 황해 흑해 히말라야 산맥 힌두스탄 평원 힌두쿠시 v • d • e • h유라시아에서의 발트 해의 위치 [편집] 역사 바이킹의 무역로 고대 로마시기 발트해는 수에비해로 알려져 있었다. 바이킹시기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동쪽 호수"라 불렀는데 이로 인해 스칸다니비아에서는 지금까지도 "동해"라고 부른다. 발트해는 전통적으로 어업이 성했으며 특산물로는 호박과 함께 목재, 타르, 아마, 삼, 모피등이 취급되었다. 스웨덴에서는 중세 시기부터 철과 은을 캐는 광산이 운영되었으며, 폴란드에서는 지금도 소금 광산이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특산물들은 고대 로마 시기부터 주요한 교역품이었다.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들은 발트 해 전역의 무역로를 독점하고 있었으나 후일 웬드족과 무역로를 놓고 싸우기도 하였다. 바이킹들은 러시아의 강을 이용하여 이 지역의 특산물을 흑해까지 운반하였다.[9] 13세기 초의 북방 십자군 활동 지역 발트해 지역은 유럽 가운데 가장 늦게 기독교로 개종한 지역으로 북방 십자군이후 기독교가 널리 퍼졌다.[10] 핀란드는 12세기 스웨덴의 십자군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지금의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에 해당하는 지역은 13세기 초 덴마크와 독일의 십자군의 공격을 받았다. 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이라 불린 이들 십자군은 잔혹한 행위로 악명이 높았다. 이 기사단은 튜턴 기사단에 흡수되었으며 이후 튜턴 기사단은 에스토니아를 지배하였다. 튜턴 기사단은 발트해 동부를 지배하였는데 이들 기사단은 폴란드, 덴마크, 스웨덴, 독일, 리투아니아 그리고 러시아의 옛 국가 중 하나인 노브고로드 공화국등에서 모인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때문에 튜턴 기사단의 국가는 모자이크 국가라고도 불린다.[11] 11세기 무렵부터 12세기 동안 발트해에서는 웬드족을 중심으로한 슬라브족의 영향력이 증대하였다. 이들은 독일 북부를 거점으로 발트해에서 해적 활동을 벌였다.[12] 13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동안 발트해는 한자 동맹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한자 동맹은 발트해를 도시간의 주요 무역로로 이용하였다. 16세기에서 17세기 초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덴마크, 스웨덴은 발트해를 두고 싸웠다. 이 싸움에서 승리한 스웨덴 제국은 발트해의 무역로를 독점하게 되었다.[13] 18세기가 되자 발트해에서는 러시아와 프러시아의 영향력이 증대하였다. 대북방 전쟁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승리한 러시아는 발트해를 독점하였고 유럽의 주요 국가로 부각되었다.[14] 제1차 세계대전이후 폴란드는 독일 영토인 폴란드 회랑을 영토로 편입시켜 폴란드도 발트해 인접 국가의 목록에 추가되었다. 때문에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부터 계속 영토를 반환할 것을 요구 하였고, 히틀러 정권이 들어서자 그 요구는 더욱 강해져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한편 독일의 민간 여객선이었던 빌헬름 구스틀로프호가 소련 해군의 공격으로 침몰하기도 하였다. 이 학살로 인해 9천여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이는 지금까지 일어난 해난 사고 가운데 최악의 것이다. [15] 2차 세계대전 이후 발트 3국은 소련에 의해 점령되었다. 또한 폴란드와 동독 역시 공산국가가 되었다. 이로 인해 발트해는 냉전 기간 동안 양극 체제의 경계선이 되었다. 서방 측은 소련의 함대가 덴마크 해협을 통과해 대서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냉전 체계는 소련이 붕괴한 1980년대 말까지 지속되었다. 2004년 발트 3국과 폴란드가 유럽 연합에 가입함으로써 발트해 대부분의 지역이 유럽 연합에 속하게 되었다. 유럽 연합에 속하지 않는 지역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칼리닌그라드 주뿐이다. [편집] 발트해 연안국 발트해에 접해 있는 국가 덴마크 덴마크 독일 독일 라트비아 라트비아 러시아 러시아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 스웨덴 스웨덴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폴란드 폴란드 핀란드 핀란드 발트해의 수계에 있으나 접해 있지는 않은 국가 노르웨이 노르웨이 벨라루스 벨라루스 슬로바키아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체코 체코 [편집] 섬 다음은 발트해에 있는 섬들이다. 올란드 제도 사리스토메리(핀란드 인근의 다도해) 파르가스 섬 나구 섬 코르포 섬 후채르 섬 쿠스타비 섬 보른홀름 섬(덴마크) 고틀란드 섬(스웨덴) 하일루오토 섬(스웨덴) 히이우마 섬(핀란드) 코트린 섬(러시아) 무후 섬(에스토니아) 엘란드 섬(스웨덴) 뤼겐 섬(독일) 사레마 섬(에스토니아) 스톡홀름 제도 우제돔 섬(독일, 폴란드) 콰르켄 섬(핀란드) 월린 섬(폴란드) [편집]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톡홀름 코펜하겐 헬싱키 그단스크 리가 슈체친 탈린 칼리닌그라드 말뫼 그디니아 킬 에스포 뤼베크 로스토크 클라이페다 투르쿠 오울루 [편집] 주석 1.↑ 타키투스, 《게르마니아》: Ergo iam dextro Suebici maris litore Aestiorum gentes adluuntur, quibus ritus habitusque Sueborum, lingua Britannicae propior. - 수에비 해 바로 오른쪽으로 에스티안국이 있다. 이들의 문화와 옷차림은 수에비족과 같다. 이들의 언어는 브리타니아의 언어와 비슷하다. 2.↑ balteus는 검을 차기 위한 허리띠를 뜻한다. 3.↑ 노르드어 사전, runeberg.org 4.↑ Dini, Pierto Umberto (2000) [1997] (in Latvian). Baltu valodas. Translated from Italian by Dace Meiere. Riga: Jānis Roze. ISBN 9984-623-96-3. 5.↑ Sea Ice survey, Space Science and Engineering Centre, University of Wisconsin, http://www.ssec.wisc.edu 6.↑ 수질오염의 생태학, 문지사, 2006, 261쪽 7.↑ 발트해 프로젝트 홈페이지 8.↑ Anders Omstedt, Christin Pettersen, Johan Rodhe1, Peter Winsor, Baltic Sea climate: 200 yr of data on air temperature, sea level variation, ice cover, and atmospheric circulation, Inter-Research 2004 · www.int-res.com, Published January 23, 2004 9.↑ A massive majority (40,000) of all Viking-Age Arabian coins found in Scandinavia were found in Gotland. In Skåne, Öland and Uppland together, about 12,000 coins were found. Other Scandinavian areas have only scattered finds: 1,000 from Denmark and some 500 from Norway. Byzantine coins have been found almost exclusively in Gotland, some 400. See Arkeologi i Norden 2. Författarna och Bokförlaget Natur & kultur. Stockholm 1999. See also Gardell, Carl Johan: Gotlands historia i fickformat, 1987. ISBN 91-7810-885-3. 10.↑ Christiansen, Erik (1997). The Northern Crusades. London: Penguin Books. pp. 287. ISBN 0-14-026653-4. 11.↑ France, John (2005). The Crusades and the Expansion of Catholic Christendom, 1000-1714. New York: Routledge. p. 380. ISBN 0-415-37128-7. 12.↑ Thompson, James Westfall. "Early Trade Relations Between the Germans and the Slavs." The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922 13.↑ Sweden and the Baltic, 1523 - 1721, by Andrina Stiles, Hodder & Stoughton, 1992 ISBN 0-340-54644-1 14.↑ The Northern Wars, 1558-1721 by Robert I. Frost; Longman, Harlow, England; 2000 ISBN 0-582-06429-5 15.↑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의 침몰, ZDF 덴마크 왕국(덴마크어: Kongeriget Danmark 콩게리게트 단마르크[*] 듣기 (도움말·정보), 문화어: 단마르크)은 유럽에 있는 입헌 군주국이며, 수도는 코펜하겐이다. 목차 [숨기기] 1 역사 1.1 고대와 중세 1.2 근세와 근대 1.3 현대 2 지리 3 행정 구역 4 기후 5 정치 6 주민 7 언어 8 종교 9 교육 10 군대 11 경제 12 문화 13 대외 관계 13.1 대한민국 13.2 파키스탄 13.3 중앙아프리카공화국 14 주석 15 바깥 고리 [편집]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덴마크의 역사입니다. [편집] 고대와 중세 고대부터 윌란 반도(유틀란트 반도)에는 데인족이 살고 있었다. 카를 대제의 북진정책의 결과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졌다. 811년 프랑크 왕국과 아이더 강을 국경으로 하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바이킹의 해상원정은 8세기 말부터 시작되었다. 구드프레드 왕은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의 공격을 잘 막아내었다. 10세기에 기독교가 전래되었다. 11세기 초 크누트 대왕(재위 1014∼1035) 때에 덴마크-노르웨이-잉글랜드(동군연합)의 왕위를 겸하는 대왕국을 창건하였다. 크누트가 죽자 곧 그 대왕국은 분열되고, 덴마크는 다시 스칸디나비아의 한 세력으로 전락하였으나, 크누드의 조카 스벤 2세에 의해 로마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신 덴마크 왕국이 건설되었다. 스벤 2세가 죽은 뒤, 1074~1134년까지 스벤 2세의 다섯 아들이 차례로 왕위에 올랐고, 그 동안에 한때 앵글로색슨의 세력하에 있던 덴마크교회는 다시 함부르크의 세력하에 들어갔다가 1104년경 룬드를 대주교구로 한 독자의 국교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1134년 이후, 다시 교회와 국가의 분열 및 국내분쟁이 지속되다가, 1157년 발데마르 1세(재위 1157∼1182)가 일어나서 국내를 통일하고 발데마르 왕조를 일으켰다. 발데마르 1세는 군사력을 재편성하여 독일에 대항하고 발트해의 슬라브 세력과 싸웠는데, 그때 슬라브인의 침입에 대비하여 셸란섬에 구축한 성채가 오늘날의 코펜하겐의 기원이 되었다. 발데마르 2세 때 정치적·경제적 발전이 촉진되었으나, 그가 죽자 다시 왕·교회·귀족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서 왕권이 약화되고, 또 같은 시대에 발트해의 지배 및 슐레스비히의 영유권를 둘러싸고 스웨덴·노르웨이·한자동맹 세력과의 항쟁이 지속되어 왕국의 약체화를 가져왔다. 발데마르 4세가 죽은 뒤, 발데마르의 딸 마르그레테와 그녀의 남편, 즉 노르웨이왕이자 스웨덴 왕위계승자인 노르웨이의 호콘 6세의 아들인 덴마크의 올라프 2세(재위 1375∼87)가 왕위에 오르자 마르그레테가 섭정이 되어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해오다가 호콘 6세, 올라프 2세의 사후인 1387년 덴마크 및 노르웨이의 군주로 승인받았다. 마르그레테는 다시 1389년 스웨덴왕을 겸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동군연합 형태의 3왕국의 통합은 1397년의 이른바 칼마르 동맹에 의해 정식으로 승인되었다. 1448년 덴마크의 왕조는 올덴부르크가로 바뀌었으나 칼마르 동맹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편집] 근세와 근대 1520년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2세가 독립을 요구하던 스웨덴과 전쟁을 벌여 보게순 전투에서 스웨덴의 스투레 일파를 격파하고 스톡홀름에 입성하여 분리주의자들을 제거하였다. 그러나 스웨덴은 다시 봉기하여 독립을 이룩하여, 결국 1523년 칼마르동맹은 해체되었다. 덴마크의 종교개혁은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3세에 의해 추진되어 루터교가 받아들여졌으며, 한편 그 무렵에 노르웨이는 자치운동이 완전히 봉쇄당한 채 사실상 덴마크의 속국이 되어 버렸다. 크리스티안 3세 때는 원로원 등 귀족세력의 강화를 바탕으로 해서 경제의 발전 및 학자의 배출 등 국가번영의 기운을 보였으나, 그 후 덴마크의 프레데릭 2세 때 발트해의 주도권을 놓고 덴마크·스웨덴·폴란드·뤼벡 사이에 ‘북방 7년전쟁’이 일어났고,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4세 때는 2차에 걸친 스웨덴과의 싸움으로 국토의 손실과 국력의 쇠퇴를 가져왔다. 1660년 덴마크의 프레데릭 3세는 귀족세력과 대립하는 도시부르주아 및 루터교 성직자와 결합하여 왕위의 세습제를 승인받고, 1665년에는 국왕의 절대주권을 승인받아 절대군주제를 확립하였다. 1788년 농노제가 폐지되고, 1797년 자유무역의 원칙에 입각한 관세법이 성립되어 덴마크의 경제가 활력을 얻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영국 함대의 공격을 받고 나폴레옹 편에 서게 된 덴마크는 영국·러시아·스웨덴 등 동맹국과 싸운 끝에, 1814년의 킬 조약에 의해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할양하고 4세기에 걸친 노르웨이 지배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하여 덴마크의 영토는 현재의 덴마크와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그린란드로 국한되었다. 국내적으로는 프레데릭의 절대왕정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1842년에는 입헌적 대의정치를 주장하는 국민자유당이 결성되었다. 그리하여 1849년 덴마크의 프레데릭 7세는 자유주의자들의 요구에 따라 전제정치를 포기하고, 자유헌법을 성립시켜서 입헌군주제를 수립하였다. 또한 1864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패배하여 홀스텐(홀슈타인)과 슬레스비(슐레스비히)를 상실했으며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1920년, 북슐레스비히를 수복하였다. [편집] 현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중립을 지켰으나 독일 바로 근처였기 때문에 민간인 상선들이 독일 잠수함에 격침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치 독일에게 점령되어 1944년까지 고초를 겪었다. 덴마크에 사는 사람들 중 유대인들이 독일군에게 끌려갔으나 중앙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비율이 미미하였다. 또한, 전쟁 중에는 그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독일군들이 빼앗았다. 1945년 5월에 덴마크 전체가 연합군에 의하여 해방되었다. 1944년에는 덴마크의 영토였던 아이슬란드가 독립하게 되었다. [편집] 지리 인공위성에서 본 덴마크. 덴마크는 윌란 반도와 여러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빙하 침식에 의해 산이 별로 없으며, 평야가 많다. 예전에는 황무지가 많았으나 개간되었다. [편집] 행정 구역 이 부분의 본문은 덴마크의 행정 구역입니다. 수도는 코펜하겐이다. [편집] 기후 덴마크의 기후는 북대서양해류(멕시코만류) 및 대서양으로부터 불어오는 편서풍의 영향을 받아 겨울에는 위도에 비해 온난하고, 여름에는 서늘하여 기온의 연교차가 적다. 이렇게 온난한 기후는 북유럽과 중부유럽의 중간지대로서의 특색이다. 그러나 연중 바람이 많고 겨울에는 기후 변화가 심하다. 편서풍으로 인해 덴마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차를 이용하여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반면, 유틀란트 반도 서부에는 강한 바람을 피하기 위하여 새로이 개척한 농지 주변이나 독립가옥 주위에 방풍림(防風林)을 조성한다. 가장 추운 1월의 전국 각지의 평균기온은 -1.5℃이고, 가장 더운 7월의 전국 평균기온은 17℃이다. 5월부터 8월은 낮시간이 거의 18시간 지속된다. 전국 각지의 연강수량은 650mm이며 강수분포는 연간 대체로 균등하나 7∼12월, 특히 8월에 비가 많이 온다. 지역적으로는 서부가 강수량이 많고 동부로 갈수록 적어진다. 강우일수(降水日數)는 연간 약 160일, 강설일수(降雪日數)는 연간 20∼40일 정도이다. [편집] 정치 이 부분의 본문은 덴마크의 정치입니다. 덴마크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기반한 의원 내각제로 정부가 구성되는 입헌 군주국이다. 현재의 국가 원수는 여왕 마르그레테 2세이며 정부의 수반은 총리가 맡고 있다. 2007년 총선 결과 자유당의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이 총리직을 3번째 연임했다.[1] [편집] 주민 주민은 게르만계의 덴마크인이 거의 대부분이며 다른 민족은 적게 존재한다. [편집] 언어 덴마크어가 공용어이다. 덴마크인과 스웨덴인, 그리고 노르웨이인은 서로 자국어로 이야기해도 무리 없이 서로 통한다.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도 외국인들 사이에서 사용된다. 덴마크의 문자 해독률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편집] 종교 루터교가 국교로 인정받으며 그 외에 감리교, 모라비안, 구세군 등의 다른 개신교 종파들과 동방정교회가 존재한다. 로마 가톨릭의 경우는 0.55% 존재한다. 이슬람교, 유대교 등의 다른 종교는 아주 적게 존재하며, 특히 이슬람은 아랍 세계나 이란에서 온 이민들이 믿는다. [편집] 교육 이 나라는 문맹률이 매우 낮은 나라이며 높은 교육열을 자랑한다. 이 나라의 자치령인 페로 제도와 그린란드 역시 높은 교육열을 자랑한다. [편집] 군대 이 나라에서는 징병제를 실시한다. [편집] 경제 이 나라의 자치령인 페로 제도와 그린란드는 2005년부터 지리는 물론이고 경제·외교적으로도 자치를 얻었다. 덴마크 본토 또한 세계적인 경제 수준을 자랑한다. 협동조합을 이루어 농업을 발달시켰다. 젖소를 많이 사육하는 손꼽히는 낙농 국가이며, 낙농 제품이 큰 수출품 중의 하나이다. 돼지의 사육도 활발하여, 햄과 베이컨이 비싼 가격으로 수출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린이들의 장난감 회사 레고의 본사가 있다. [편집] 문화 Lt rubjerg knude.jpg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이 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오랫동안 같은 군주 밑에서 연합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형제의식이 강하다. [편집] 대외 관계 [편집] 대한민국 덴마크는 한국 전쟁 때 대한민국에 병원선 MS 유틀란디아호를 보내 의료 지원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병원선의 의료 기자재를 한국에 기증하고 한국에 국립의료원을 설립하여 한국의 의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959년에 한국과 덴마크는 정식으로 수교하였다. 코펜하겐에 대한민국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 서울에 주한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 2011년 5월 13일 비안보분야 동맹으로는 처음으로 녹색성장 분야 동맹을 체결했다. 또 대한민국 지식경제부와 덴마크 기후에너지부 간의 녹색성장협력 양해각서를 비롯해 정부와 기업간 친환경사업과 녹색기술협력 분야에서 9개의 양해각서도 체결하였다. 모두 293 명(재외국민 214 명, 시민권자 79 명)의 한민족들이 덴마크에 거주(2010년 12월 기준)하고 있다. [2] 또한 2007년 현재 덴마크에는 약 9,000명의 한국 입양인이 있다. 한국 대사관, KOTRA, 한인교회, 한국센터, 한글학교가 있고 정한친선협회, 유틀란트 모임, 코리안 클럽, 한인회가 있다. [편집] 파키스탄 파키스탄은 코펜하겐에, 덴마크는 이슬라마바드에 각각 대사관을 두고 있다. 약 2만명의 파키스탄인들이 덴마크에서 거주하고 있는데 이것은 덴마크 내의 비서방국의 커뮤니티로서는 5위 규모이다. [편집]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덴마크는 방기에 영사관(상위 기관은 駐부르키나파소(와가두구 소재) 대사관)을 두고 있고,[3]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駐벨기에 대사관(브뤼셀 소재)이 주덴마크 대사관을 겸임하고 있다. [4] [편집] 주석 1.↑ 2007년 덴마크 조기 총선 결과 관련 기사 2.↑ 국가별 재외동포현황(2011).xls (엑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3.↑ Central African Republic.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Denmark. 2012년 7월 21일에 확인. 4.↑ Diplomatic missions in Denmark. Government of Denmark. 24 December 2011에 확인. [편집] 바깥 고리 Commons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 미디어 자료가 있습니다. 덴마크 위키인용집 위키인용집에 이 문서와 관련된 문서가 있습니다. 덴마크 (영어/독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 덴마크 정부 공식 웹사이트 주덴마크 대한민국 대사관 (한국어) 덴마크 관광대서양(大西洋, Atlantic Ocean)은 세계에서 둘째로 큰 대양이다. 대서양은 남·북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남극 대륙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해역 총 면적은 106,40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이 바다는 지구 표면의 약 1/5을 차지하고 있다. 대서양의 'Atlantic'은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에서 나온 말로, "아틀라의 바다"라는 뜻이 된다. 이 명칭이 최초로 발견되는 사료는 기원전 450년경의 헤로도토스의 역사이다. 고대에는 에티오피아 해라는 표현도 쓰였는데, 이것은 아프리카 전역을 지칭하기도 했던 지명 에티오피아와 그 바다를 이르는데서 나온 말이다. 유럽인들이 다른 대양을 발견하기 전까지 "대양(ocean)"이란 서유럽 너머의 광대한 바다인 대서양을 일컫는 표현이었으며, 그리스인들이 세계를 둘러싸고 있다고 믿었던 오케아노스라는 거대한 강의 이름에서 이 "대양(ocean)"이라는 단어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대서양은 서쪽의 아메리카 대륙과 동쪽의 유라시아 및 아프리카 사이에 세로로 S자 모양으로 길게 뻗어있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 대양의 일부로서, 대서양은 북쪽에 북극해(대서양에 포함되기도 한다)와, 남서쪽으로 태평양, 남동쪽으로 인도양과 만나며, 남쪽에는 남극해가 있다. 적도를 기준으로 북대서양과 남대서양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지형을 감안하여 기니비사우의 벨로마 지역에서 브라질의 히우 그란지 두 노르치 주를 잇는 선을 기준으로 삼아, 기니 만은 남대서양에, 남아메리카 북부 해안은 북대서양에 포함한다. [편집] 바깥 고리 위키인용집 위키인용집에 이 문서와 관련된 문서가 있습니다. 핀란드 재핀란드 신한인회 [편집] 핀란드 (핀란드어/스웨덴어/영어) 핀란드 정부 홈페이지 (핀란드어/스웨덴어/영어) 핀란드 외무부 (영어/) 핀란드 국가 포털 사이트 (영어/) Visit Finland [편집] 대한민국 주핀란드 대한민국 대사관 핀란드 해외여행(핀란드편) 핀란드 개요 핀란드에 대하여 재핀란드신한인회/학생회</div>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정치 외면으로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 당한 한국 관련글 세계사 최고레벨 선생님.jpg 여자들이 보는 데이트시 식사장소 서열.JPG 앤티크(antique) 느낌 사진들 자폭(평생_갈_졸업앨범에_남겨진_글_일베충).jpg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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